교황 "평화의 도구 돼달라"…트럼프 "말씀 잊지 않겠다"(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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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2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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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트럼프에 환경회칙·평화 상징 메달 선물…우호적인 분위기서 첫 만남
교황청 "협상과 대화 통한 세계 평화 증진 방안 등에 관해 의견 나눠"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직접 얼굴을 맞댔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사도궁을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한 뒤 30여 분 동안 면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을 거쳐 전날 저녁 순방 세 번째 행선지인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12억 신자를 거느린 가톨릭의 최고 지도자이자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겸손한 행보로 세계적으로 큰 신망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교황과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난민 문제, 기후 변화, 경제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제 현안에서 의견 충돌을 보인 바 있어 두 지도자의 만남에는 일찌감치 이목이 집중됐다.

교황과 트럼프는 사형제도, 무기 거래 등 대부분의 이슈에서 생각이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열렬한 낙태 반대자라는 공통분모도 지니고 있다.

교황과 트럼프는 작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장벽 건설 계획 등을 놓고 설전을 주고 받은 적이 있어 이날 첫 대면에서도 껄끄러운 장면이 노출되지 않을까하는 관측도 대두됐으나, 만남 분위기는 대체로 우호적이었다는 평가다.



짙은 색 양복을 입은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과 만나자마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뵙게 돼 큰 영광"이라고 말해 자세를 한껏 낮췄다. 교황 역시 옅은 미소를 띠며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했다.

두 지도자는 이어 사도궁에 위치한 교황 개인 서재의 널따란 책상에서 통역만 대동한 채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교황청에 따르면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현안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특히 중동의 분쟁 상황을 언급하며 정치적 협상과 종교간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분여에 걸친 교황과의 면담을 마무리한 뒤 멜라니아 여사와 맏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 동행한 가족과 미국측 사절단을 교황에게 소개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첫 순방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사우디 여성들이 쓰는 히잡을 쓰기 않았던 멜라니아 여사와 이방카는 이날은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교황을 방문할 때 입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어 예의를 갖췄다.

교황은 멜라니아 여사와 악수할 때 스페인어로 "남편에게 어떤 음식을 주느냐, 포티카?"라고 말했고, 멜라니아 여사는 트럼프의 큰 몸집을 빗대는 교황의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포티카는 멜라니아 여사의 고국인 슬로베니아에서 즐겨 먹는 고열량의 케이크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만남을 마무리 짓기 전 서로를 위한 선물도 교환했다. 교황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교황청이 2015년 발행한 기후변화와 환경보호에 관한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포함해 3권의 교황청 문서와 교황의 신년 평화 메시지,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가지가 그려진 메달을 전달했다.

교황은 올리브 나무를 묘사한 메달에 대해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올리브 나무가지처럼 평화의 도구가 돼어 달라"로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우리는 평화를 이용할 수 있다"(We can use peace)고 화답했다. 트럼프는 또 교황에게 받은 환경 회칙 등도 읽어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에게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책들을 가져왔다"며 "교황께서 이 책들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할 때 킹 목사와 그의 민권 운동 업적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를 하며 다음을 기약했고,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에게 "오늘 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은 면담 이후 낸 보도자료에서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생명과 종교·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데 공동의 노력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미국 정부와 보건과 교육, 이민자 지원 등의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미국의 가톨릭 교단 사이에 원활한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과 면담 후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 벽화가 그려있는 시스티나 성당 등을 둘러본 뒤 로마 시내로 이동,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각각 회담했다.

그는 이후 25일로 예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이날 오후 전용기 편으로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했다. 그는 26∼27일에는 시칠리아 섬 타오르미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23일 밤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의 지붕에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구가 우선'(Planet Earth First)이라는 메시지를 투사하며 전임 오바마 정부의 환경규제를 폐지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전향적인 환경 정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22일 밤 이슬람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테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 유럽 전역에 다시 테러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담을 대비해 이탈리아 당국은 바티칸과 로마 중심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이동 경로를 전면 봉쇄하고, 시내 곳곳에 무장 병력을 배치하는 등 초비상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ykhyun14@yna.co.kr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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