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알권리·법원 신뢰 확보" vs "정치적 쇼로 변질 우려"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이 열리던 5월 23일. 온 국민의 이목이 법원으로 쏠린 이 날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원의 형사 재판을 맡는 재판장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1심 주요 형사사건의 재판 중계방송에 관한 설문조사'란 제목으로 '재판장으로서 중계를 허가할 의향이 있는지 / 허가한다면 재판의 어느 단계에서 허용할지 / 선고를 생중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6가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특정 사건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정 농단' 재판을 염두에 둔 설문으로 읽혔다는 게 이메일을 받은 판사들의 전언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4월에도 법원 내부망에 전체 판사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며 "이제 실질적 검토가 시작되는 것 같다"고 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 내부에선 박 전 대통령 재판 중계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중계된다면 모든 변론을 허용할지, 녹화가 아닌 생방송·인터넷 중계도 허용할지 등에 대해서다.
국민의 수요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방청 경쟁률은 7.7 대 1에 달했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의 생중계 시청률도 37.73%나 됐다.
지난 첫 공판 당시엔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입장 모습 1∼2분 만이 카메라에 공개됐지만,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은 이미 촬영·중계 장비가 갖춰진 상태로 알려졌다.
당장 이날 열리는 박 전 대통령의 3차 공판을 중계하는 것도 기술적 문제는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재판 중계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대법원의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에 있다.
규칙은 재판장 허가에 따라 법정 내 촬영을 허용하지만, 본격적인 공판·변론 시작 이후엔 어떠한 녹음·녹화·중계도 불허한다. 이는 그간 상위법령인 법원조직법 제57조와 헌법 제109조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한 것과 상충한다는 논란을 빚어왔다.
이 때문에 법원 내부에선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더불어 이번 형사 재판장 설문결과 등이 중계 허용을 위한 규칙 개정 논의의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재판 중계에 대한 법원 안팎의 의견은 갈리는 상황이다. 이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재판이 정치적 선동이나 '쇼'로 변질할 수 있다는반대론이 팽팽히 맞선다.
찬성론 측은 현재의 '밀실 재판'을 타파하고 재판의 공정성·신뢰성을 확보하자고 주장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국민은 언론이란 '필터'를 통해서만 재판 내용을 알 수 있어 정보 왜곡이 생긴다"며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판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론 측은 카메라를 의식한 피고인·증인이 입을 닫으며 재판 진행이 어려워지거나,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사생활이 여과 없이 방송되며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을 중계할 경우 법정이 법적 다툼보다 '정치적 투쟁의 장'이 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경우 탄핵심판 기간 중 선고뿐 아니라 모든 변론을 촬영해 2∼3일 후 홈페이지에 올리며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 대법원도 2013년부터 중요 사건의 공개변론을 온라인으로 생방송 한다.그러나 법원의 1·2심 재판은 현재까지 한번도 생중계하거나 녹화해 공개한 적이 없다.
외국 사례를 보면 미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상당수 지역에서 1·2심 재판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방송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재판도 실시간 중계하거나 법정 내부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TV 공공 채널을 통해 주요 심리 내용을 소개한다. 영국은 대법원의 재판 전 과정과 항소심 법원의 선고 등의 중계를 일부 허용한다. 반면에 일본은 일부 허가 규정이 있음에도 사실상 촬영·중계가 막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banghd@yna.co.kr
(끝)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