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착한투자'…국내 자본시장 곳곳 확산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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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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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1호 선정·사회책임투자 펀드 8년만에 출시
은행 여신과정에도 반영…지주사 주가 연일 급등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국내 자본시장에 '사회책임투자'로 불리는 착한투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미 일반화된 '윤리적 소비'와는 달리 국내에선 후진성을 면치 못했던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가 금융투자업계에서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이 친환경적인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 지배구조는 건전한지를 따지는 사회책임투자가 자본시장에서 '윤리'가 아니라 '지속가능'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사회책임투자(SRI) 펀드가 처음 생겨나고 2006년 국민연금에서 펀드를 위탁 운용하기 시작했지만, 기업은 물론 투자자들의 무관심과 제도 미비로 시장의 외면을 받아왔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지난 24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발표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1호 투자자'는 금융당국이 준비해온 ESG 정책의 첫 단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 금융위기 이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작년 말 기본 7개 원칙을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간 뒤 5개월여 동안 도입기관이 나오지 않았지만, 사모펀드(PEF)인 제이케이엘(JKL)파트너스가 이날 처음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IBK투자증권을 포함한 23개사도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예정돼 있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은 최근 연구용역을 발주하며 본격적인 도입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는 무려 8년 만에 출시 상품이 나온다.

하이자산운용이 29일 출시하는 '하이사회책임투자증권투자신탁'은 단순히 '죄악주(전쟁·담배·도박 등)'를 제외하는 네거티브 방식에서 탈피, 우량한 사회책임 기업을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제로인(www.funddoctor.co.kr)에 따르면 소위 '착한기업 펀드'로 불리는 SRI 펀드는 현재 국내에 14개가 운용 중인데 연초 이후 평균 수익률이 11.06%, 최근 3개월 평균 수익률이 6.85%로 나쁘지 않다.

다만 일반 성장주식형 펀드와 비교해 눈에 띄는 기업이 없는 데다 설정액도 크지 않아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이달 들어서만 138억원이 빠져나가는 등 올해 들어 574억원의 순유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 실효성을 높이려는 정부 정책이 확산하고 코스피 대세장에 차익 시현을 위한 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진성남 하이자산운용 이사는 "전체 운용자산 대비 ESG 투자 비중이 유럽은 60%에 달하고 미국도 30% 이상인데 반해 아시아 지역은 1%가 채 안 된다"며 "그러나 시장에서 ESG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라임자산운용이 작년 11월에 출시한 국내 첫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라임데모크라시'도 최근 미국 등 해외 연기금 기관투자가를 물색하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일정 의결권을 확보한 후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이에 기반을 둔 주가 상승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다.

나아가 ESG는 조만간 은행 여신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신한금융지주는 ESG 평가를 기업 여신 의사결정 및 투자 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를 연내 도입할 방침이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정책이 시행되면 사회적 책임경영을 수행하지 않은 거래 기업에 여신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SG 바람은 사실 주식시장에서 이미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본 투자자들이 일찌감치 주요 그룹 지주사들 주식에 베팅하면서 그룹 지주사들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LG, GS, 한화의 주가는 일제히 52주 신고가 행진을 벌이고 있고 현대차, 현대중공업, 롯데 등 지주회사 전환이 발표됐거나 가능성이 큰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계속 요동치고 있다.

이처럼 지주사 주가 강세나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에 따른 주가 상승은 국내에 머지않아 윤리적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한층 힘을 싣고 있다.

전 세계 200여 금융기관이 회원으로 가입한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는 지난해 말 ESG 현황 보고서에서 아시아 주식시장의 많은 기관투자자가 아직 투자의사 결정 과정에 ESG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UNEP FI는 특히 한국에 대해 그간 기업의 ESG 성과 분석에 소홀했던 이유를 투자 과정에서 ESG 이슈를 다뤄야 할 법적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제도적 보완에 나서야 할 이유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부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비롯한 윤리적 투자 경향은 금융시장 선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기업의 성장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향후 주식시장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faith@yna.co.kr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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