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혼술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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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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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술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렇다. 술의 바탕은 물이지만, 마음은 활활 타오른다. 물은 살기 위해 마시지만, 술은 살아 있어 마신다. 물은 목을 축이고, 술은 가슴을 축인다.
물에 불을 담은 것이 술이라 했다. ‘수(水)+불’이 ‘수불’로 발음되다가 순경음 비읍의 ‘수블’로, 이어 ‘술’로 변화돼 왔다는 것이다. 물과 술의 공통점은 칼로 벨 수 없다는 것이다. 벨 수 없기에 끊기도 힘든 것일까. 잡을 수 없는 게 바람이면, 자를 수 없는 게 정(情)이라 했다. 그래서 벨 수 없는 술을 꺾는 자리에서 자를 수 없는 정도 나누는 것일까.
술은 더불어 나눠야 제격이다. 수작(酬酌)할 상대가 없으면 달과 함께 마시고, 달도 없는 밤이면 꽃이라도 꺾어 놓고 마신다고 한다. 그래도 자작자음(自酌自飮)보다 여군동취(與君同醉)이다. ‘혼술’보다는 ‘더불어 술’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더 없는 호주(好酒)이리라. 여자와 남자가 만나 좋을 호(好)를 이루지 않나. 시쳇말로 ‘심쿵(심장이 쿵쾅쿵쾅)’한 상황이다. 그 절정이 합환주(合歡酒)이다. 설렘과 기대감에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술이란 뜻이다.
건국설화에도 합환주가 나온다. 바로 고구려의 동명성왕, 주몽(朱蒙) 이야기다. 하백(河伯)에게 세 딸이 있었다. 유화, 선화, 위화다. 이들이 압록강에서 미역을 감는데, 천제의 아들 해모수 눈에 띈다. 신하를 보내 모두 함께 만나자고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짐짓 예를 차려 웅장한 궁전을 짓고 이들을 초청한다. 설레는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다. 대취한 여인들은 돌아가려 하지만, 해모수의 생각은 다르다. 만취한 유화와 합환합궁(合歡合宮), 머지않아 아들이 태어난다. 그가 주몽이다.
좋게 보면 합환이지만, 달리 보면 ‘심신 상실을 틈탄 간음’이다. 그럼에도 역사서에 버젓이 나오고 합환주의 효시로도 일컬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약탈혼이 성행하던 부족국가 시대임을 감안하면, 그 또한 낭만적 만남이란 인식이었을까. 여하튼 그때는 맞더라도 지금은 틀리다.
당연히 구속감이다. 그런데 법률이 묘하다. 바로 형법 10조인데, 요약하면 “심신미약자는 한정책임능력자로서 형이 감경(減輕)된다”는 것이다. 심신미약자의 대표가 ‘알코올 중독’이다. 달리 말해 “술이 죄를 지었다”는 말이다. 잘못이 있다면 술 마신 게 죄라는 뜻인가. 그래서 술을 벌 주자는 ‘벌주(罰酒)’인가. 이런 따위를 ‘휴머니즘 형법’이라고 해야 하나.
술은 죄가 없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술이 무슨 죄가 있나. 강도가 부엌칼을 휘두르면, 칼이 죄인가. 장미 가시에 심장이 찔렸다면, 장미를 처벌해야 하나. 술을 탓하는 자는 ‘주성(酒性) 모독’으로 가중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논어에 ‘불위주곤(不爲酒困)’이라 했다. 술 때문에 곤경에 처할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 술 마시는 자세이다. 그래서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고 했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하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술에 물을 타면 술인가 물인가. 물에 술을 타면 물인가 술인가. 전자는 ‘술물’이요, 후자는 ‘물술’인가. 한 방울이라도 술이 섞였으면 술이라는 주장이 있다. “소낙비만 비냐, 이슬비는 비가 아니냐, 안개비는 어떠냐.”
기상청 강우 기록에 ‘0.0mm’가 있다. 비가 내리기는 했으나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강우량이 적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알코올 도수가 ‘0.00001도’라도 술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한 방울의 비가 대지를 바꾸듯이 한 모금의 술도 인간과 세상사를 바꾼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드라마 ‘혼술남녀’를 보도록 권했다고 한다. 척박한 제작 현실에 PD가 죽음을 택했던 그 드라마이다. 혼술이든 혼밥이든 ‘스스로 혼’에는 소통과 공감의 ‘더불어 혼(魂)’이 없다. 불통과 나르시시즘에 취하기 쉽다. 심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 그래서 ‘혼술유감’이다.
꾀꼬리 소리 잦아드는 유월의 첫날이다. 물오른 자귀나무 꽃 그늘 아래 벗과 함께 임과 함께 합환주를 나누면 어떤가. 근심만 남기는 합환주(合患酒)는 말고. 마침 자귀나무 한자명도 합환수(合歡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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