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웜비어 사망 쇼크'로 미국 내 대북 여론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대북정책에서 당분간 더 이상의 '당근'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일단 이례적으로 미국으로 조전을 보내는 등 미국 내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웜비어 사망과 관련해 유가족에 조전을 보내면서 북한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데 대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문 대통령이 조전을 보낸 데에는 참모들의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아침 상황점검회의에서 '직접 위로전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고 대통령이 수용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진심이라고 표현했고, 그런 마음을 충분히 미국 국민, 가족에게 보내드리는 게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도 "미국 국민의 충격과 안타까움, 분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도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미 국민과의 공감 표명 차원에서 (위로전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런 발빠른 대응 뒤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 했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악화된 미국 내 여론을 살펴야 하는 트럼프 정부를 상대하는 동시에,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의 발언까지 겹치면서 그야말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안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정부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 문제가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고위 당국자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해법에 대해 "일단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우리 생각만으로 될 것이 아니니 동맹 차원에서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며 "창의적이고 담대한 구상을 고민 중"이라며, 설득하든 공조를 구하든 미국과의 조율이 최선의 방법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고의 압박과 관여를 표방해온 미국이 대북 압박과 제재를 병행하는 가운데 포괄적이고 단계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미국에 설득하기란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다음 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메시지가 채택된다면, 향후 수년간 남북관계를 제한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그에 반하여 한국이 주도적으로 남북대화를 추진할 경우 한·미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이 21일 열리는 미·중 외교·안보 대화(D&SD)에서 최우선 의제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다루면서 중국에 대북제재 강화를 요구하겠다고 19일 밝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도 수면 위로 오르는 등,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웜비어 사망 사건은 이미 고차원 방정식이 됐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웜비어 사망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동안 경색될 것"이라며 "당분간 대화 얘기는 들어갈 수밖에 없고 제재와 압박 강화와 중국의 역할 촉구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