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라이(起來·일어나라)!”
매일 저녁 6시 30분이 되면 홍콩 최대 방송국인 TVB에서는 어김없이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배경으로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영상이 방송된다.
TVB 뿐만이 아니다. 홍콩 내의 모든 방송국에서는 각자 정해진 시간에 국민교육책임소조(國民教育專責小組)가 제작한 1분 30초짜리 의용군 행진곡 영상을 틀어야 한다.
7월 1일로 반환 20주년을 맞는 홍콩의 거리는 20주년을 축하하는 네온사인들로 가득하다. 7월 1일 당일에는 6억4000만 홍콩달러(약 935억원)을 쏟아 부은 사상 최대의 반환 축하 행사가 예정돼 있다.
홍콩 언론들은 국가주석이 된 이후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하는 시진핑(習近平)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친중(親中) 계열 언론들은 반환 후 홍콩이 이루어 낸 경제적 성과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언론과 정부가 조성하는 ‘반환 경축’ 분위기에도 시민들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될 불꽃놀이 중에 쓰일 ‘중국 홍콩(中國 HK)’이라는 글자를 홍콩에서 쓰는 번자체가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자체로 표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콩인들 사이에는 “이번 행사는 결국 중국 본토인들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홍콩의 경제구조가 본토 대상의 중개무역 및 3차 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본토에서 쓰이는 푸퉁화(普通話·중국 표준어)는 홍콩인들의 취직에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았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영어의 위상은 떨어졌다.
문제는 이로 인해 ‘영어가 통하는 도시’로서 홍콩이 아시아 내에서 가졌던 장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라이벌 도시들과의 국제화 경쟁에서 계속 밀려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어교육회사인 EF(Education First)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영어능력지수에 따르면 홍콩은 54.29점으로 세계 30위를 차지했다.
이는 홍콩의 글로벌 허브 라이벌인 싱가포르(63.52점·6위)는 물론 말레이시아(60.70점·12위), 한국(54.87점·27위)보다도 낮은 순위였으며 중국 본토(50.94점·39위)와의 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단순히 언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홍콩의 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홍콩 토박이들은 경제 의존도 심화, 본토 출신 이주민 증가 등으로 홍콩이 그 특성을 잃고 결국 중국의 일개 도시가 돼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에 휩싸여 있다.
더욱 암담한 현실은 이러한 ‘대륙화(중국화)’ 과정에 홍콩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한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독립 세력의 위법행위를 엄정히 처리할 것이며 청소년들에게 애국주의 교육 및 본토와의 교류를 강화시킬 것”이라 밝혔다.
2007년부터 중국 중앙정부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국민교육’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과 공산당 영도 체제를 긍정하는 친중(親中) 교육방안이다. 이 교육방안은 시민들의 반대 시위에 의해 한 차례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람 당선인이 애국주의 교육 도입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반환 20년을 맞은 홍콩 시민사회는 정체성의 기로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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