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69·사법연수원 2기)의 6년 임기가 내달 24일 만료됨에 따라 18일 또는 19일 지명될 차기 대법원장 자리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진보 성향의 개혁적 판결을 내려 이른바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5명의 대법관 가운데 2명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힌다.
'독수리 5형제'는 박시환 전 대법관(64·연수원 12기)·전수안 전 대법관(65·사법연수원 8기)·김지형 전 대법관(59·사법연수원 11기)·김영란 전 대법관(60·사법연수원 10기)·이홍훈 전 대법관(71·사법연수원 4기)을 지칭한다.
이들은 2005년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지난 5월 10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돼 정권을 잡으면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부에서 중용됐거나 될 전망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진보적 성향의 대법원장 임명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차기 대법원장 후보는 박 전 대법관과 전 전 대법관 '양자구도'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대법원장으로 임명되면, 나머지 한 명은 행정부나 사법부의 핵심 포스트로 자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통령이 점찍은 '유력 후보자' 박시환 전 대법관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된 박 전 대법관은 앞서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한 인연이 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경남중학교 1년 후배라는 사실과 사법연수원 12기 동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경남 김해 출신인 박 전 대법관은 법원 내 이른바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지냈다. 1988년 당시 젊은 판사 300여명이 김용철 대법원장의 유임에 반대해 연판장을 돌린 '2차 사법파동'의 주역이었다.
그는 서울지법 부장판사이던 2003년엔 서열 위주의 대법관 인사 관행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져 4차 사법파동을 촉발시켰다. 박 전 대법관은 2011년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전임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양 대법원장이 거부하고 있는 '판사 블랙리스트'에 대한 전면 재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첫 여성 대법원장 탄생 기대 전수안 전 대법관 급부상
전수안 전 대법관도 박 전 대법관과 함께 주요 차기 대법원장 후보다.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 후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문 대통령의 인사스타일과 맞아떨어진다.
그는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통신비밀보호법 감청 관련 조항 등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진보적 법관으로 분류된다. 2006년 국내 두 번째(최초는 김영란 전 대법관)로 여성 대법관에 임명됐으며, 대법관 재직 때 엄정한 법잣대를 적용해 공정한 선고를 내렸다는 평을 받았다. 대법관 퇴임 후에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 등 공익활동에 매진해 인권 취약계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전 전 대법관이 지명될 경우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이 탄생하게 된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두 전직 대법관은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리면서 사법개혁 필요성에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어 어느 쪽이든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법원 개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법관과 전 전 대법관은 대한변협이 추천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 5명에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은 이르면 18일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해 국회에 임명동의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청탁금지법'으로 반향 불러일으킨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 전 대법관은 2004년 참여정부 때 첫 여성대법관으로 임명된 뒤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리면서 '독수리 5형제 대법관'에 이름을 올렸다. 1956년 부산에서 출생해 197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서울대 법학과 석사를 이수했다.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원지방법원과 서울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지냈다.
2010년 대법관 임기 6년을 모두 채우고 퇴임한 뒤 김 전 대법관은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11~2012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의 원안을 만든 주인공이다. 법안은 당초 공직자의 부정한 금품 수수를 막겠다는 취지로 제안됐다. 입법과정에서 원안이 수정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전 대법관은 퇴임 뒤부터 현재까지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공익 기여' 이홍훈 전 대법관, 서울대 이사장 맡아
이홍훈 전 대법관도 2006년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법원 내 재야 인사'로 불릴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판결을 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북 고창 출신인 이 전 대법관은 행정법과 환경법 전문가로 한국행정판례연구회와 법원 내부의 환경법 커뮤니티를 이끌었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재직 시에는 최초로 일조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행정처 조사심의관으로 재직할 당시 법원행정처에 속해 있던 법원도서관을 독립 기관화하는 데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대법관 퇴임 후 한양대와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다. 2012년부터는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로 있으면서 화우공익재단 이사장을 맡아 공익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올 2월부터는 서울대학교 재단 이사장을 맡아 활동을 하고 있다.
◆'非서울대 출신' 순혈주의 완화시킨 김지형 전 대법관
김지형 전 대법관은 최근 '독수리 5형제'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및 에너지 정책의 지침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독수리 5형제 중 가장 먼저 문재인 정부의 공직에 임명됐다.
전북 부안 출신인 김 전 대법관은 1980년 원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대법관 임명 당시 비 서울대 출신의 40대 고법 부장판사라는 점에서 '대법원 순혈주의'를 완화시킨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관 14명 중 유일한 비 서울대 출신이었다.
2009년 이건희 전 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핵심 인사 8명에 대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의 상고심 재판 주심을 맡았으며 비배임 판결이 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1년 대법관 퇴임 후엔 노동법에 조예가 깊어 지난해 열아홉살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과 삼성전자 반도체질환 조정위원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2014년부터는 법무법인 지평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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