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선고 D-1] '통상임금' 명운, 법원에 달렸다...‘신의칙’ 인정이 키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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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구·윤정훈 기자
입력 2017-08-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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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 시나리오별 분석.[자료=기아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가 31일 오전 내려진다.

이번 소송 결과는 기아차와 자동차 산업을 넘어 산업계와 노동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법조계와 재계 안팎에서는 판결의 쟁점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여부와 그 범위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신의칙' 통상임금 소송의 쟁점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향후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이 상당하다. 특히나 이번 소송은 향후 통상임금과 관련된 판결에 중요한 판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은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유동성 위기는 물론 일자리 축소, 투자 위축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관건은 재판부가 '신의칙'을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 여부다. '신의칙'이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지칭한다.

앞서 2013년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을 근거로 과거 분 소급 지급을 막은 바 있다. 과거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해 임금 수준 등을 결정했다면, 이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더라도 이전 임금을 새로 계산해 소급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아차 측은 과거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 아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는데 추가 지급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신의칙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노조 측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돼 '노사가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한 것에 대한 신의칙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아차 노조는 "기아차 통상임금 문제를 고임금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을 지키고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려는 통상임금 본연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한 곳은 바로 경영계"라며 맞서고 있다.

◆"현대차,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 안돼"

이번 판결은 크게 3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볼 수 있다.

우선 재판부가 노조의 요구를 모두 인정할 경우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서 '신의칙'도 적용하지 않을 경우 기아차는 최대 3조원(회계평가 기준)의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재판부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간주하되 '신의칙'을 적용한다면, 기아차는 일단 과거 소급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또는 전부에 대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향후 새 통상임금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에 따른 임금 상승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차처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과거분은 물론 앞으로도 통상임금 이슈로 인한 인건비 증가에 대한 걱정은 사라진다.

법조계에서도 기아차가 과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노사합의가 존재하는 등 이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2심까지 ‘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에 ‘고정성(다른 조건 없이 일한 만큼 지급)’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혼란과 우려의 시선 가득

통상임금 자체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각계의 관심도 크다. 재계에서는 기아차가 패소해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는 판결이 나올 경우 사회적 비용이 약 3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아차가 패소하면 완성차와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이 넘는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기감이 커지자 여야 국회의원들은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 최대 외국기업 경제단체인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역시 통상임금 선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여 재판부가 기아차 근로자들이 요구한 통상임금을 인정할 경우 해외 기업들의 국내 투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암참 관계자는 "통상임금의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고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에 기반한 법적 규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정책이 국내 경제의 경쟁력과 전반적인 국내 제조산업의 경쟁력에 예기치 않은 영향을 미칠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통상임금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서 임금 관련 정책은 노사간 신뢰를 바탕으로 결정돼야 한다"며 "통상임금과 관련 정부의 정책 결정 역시 근로자 및 노동시장의 번영과 기업경영의 불확실성 제거 및 기업 경쟁력 유지가 모두 고려된 균형잡힌 결정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상임금으로 인한 혼란이 노사간 갈등을 지속해서 유발하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이 법·제도 개선을 통한 통상임금의 기준과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한상의는 30일 '주요 입법현안에 대한 경제계입장' 보고서를 통해 입법 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사를 밝혔다. 대한상의는 "통상임금 개념과 기준을 명확히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조속히 처리해달라"며 "통상임금 관련 입법이 지연되면 앞으로 노사소송 소지가 계속 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의 산정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임금결정 기준이지만 정의, 산입범위에 대한 법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한 대법원 판결 이후 법적 분쟁이 확대되고 있다"며 "통상임금 개념과 산입범위를 조속하고 명확하게 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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