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유럽에서 전례없는 통화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물가가 서서히 오르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0월 일본의 꼬치구이 전문점인 도리키조쿠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 인상에 나섰다. 현재 임금으로는 파트타임 직원을 구하기가 어려워 임금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린, 아사히, 삿포로, 산토리 등 일본의 4대 맥주회사 역시 최근 약속이나 한 듯 근 10년 만에 가격 인상 방침을 밝혔다.
WSJ는 1990년대 말부터 15년 동안 디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던 일본으로서는 주목할 만한 소식이라면서 일본은행의 대규모 통화부양책을 앞세운 아베 총리의 디플레이션 사고방식 타개노력이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1일(현지시간) 발표된 일본의 10월 근원소비자물가(CPI) 지수는 전년 대비 0.8% 상승했다. 일본은행의 2% 목표치 달성은 아직 요원하지만 불과 지난 12월만 해도 마이너스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것이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프레야 베아미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SJ에 “중요한 것은 인플레 상승의 배경이 점점 더 타이트해지는 고용시장에 있다는 것”이라면서 내년에는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소폭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아베 총리가 내년 기업들에 임금 3% 인상을 조건으로 법인세 실효세율을 대폭 인하해줄 방침이어서 임금 상승에 따른 인플레 효과도 기대된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일본은행이 수익률 커브 통제에 변화를 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토탄리서치의 가토 이즈루 대표는 일본은행이 내년 중에 장기금리를 현행 0%에서 0.2~0.3%까지 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구로다 총재는 인플레 2% 달성 시기를 2019회계연도 경으로 전망하면서 목표 달성을 위해 현행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밝혔다.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에 만료되며 연임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편 물가상승률 개선 조짐이 보이는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유럽의 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5% 올랐다. 10월의 1.4%에서 높아지면서 ECB의 2% 목표에 한층 다가간 것이다.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9%를 기록했다. 10월 유럽 실업률은 8.8%까지 떨어지면서 2009년 1월 이후 최저까지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로존의 인플레가 2018년에 1.5%, 2019년에 1.7%를 각각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ECB는 지난 9월에 내년 인플레 전망치를 1.2%로 제시했으나 12월 경제전망 업데이트를 통해 내년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ECB가 내년 초부터 9월까지 월 양적완화 규모를 600억 유로에서 300억 규모로 줄이기로 한 결정과 관련해 조만간 추가적인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캐피탈 이코노믹스의 제니퍼 맥케언 애널리스트는 “10월 유로존 실업률이 하락하면서 ECB는 내년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우려를 한층 덜게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근원인플레는 ECB가 출구전략에 경계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