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6월 25일)는 한국전쟁 발발 6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8년 전인 2010년 6·25전쟁 60주년 때 광화문 미국대사관과 맞은편에 있는 정부종합청사에는 ‘우리가 기억한다(We Remember)’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전쟁 관련 대형 전시회 개최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그때와 비교하면 올해는 만 5년이나 10년이 되는 해가 아니기 때문인지, 달아오르는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 때문인지, 참전용사들의 군부대 방문 외에 6·25 기념 행사는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때마침 북·미 간 미군 유해 반환도 이뤄지고 있어 올해의 6·25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듯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연출했다. 반도에 드리운 전운이 사라지고 평화의 햇살이 여느 때보다 따뜻하다.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서명에 이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으며, 북·미 간 비핵화의 실현과 양국 관계의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공동성명까지 서명됐다.
남북 간 군사회담, 적십자회담, 연락사무소 설치 등이 연이어 진행되며 남북관계도 가파르게 개선되고 있다. 비록 북핵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만 지속되고 있는 협상과 대화의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뚝심’이 돋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6·25전쟁의 비참함을 피부로 겪어본 사람으로서 당선되자마자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으며 이를 판문점 선언에도 구현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운전석’에 앉을 것이라는 의지도 분명하다. 비록 북핵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고 문 대통령이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남북관계에서 충분히 주도적인 ‘운전석’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미 정상회담을 주선하는 등 운전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대 진보 정권도 마찬가지지만 문재인 정부도 북한에 대해 매우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화해와 협력을 골간으로 하는 정책방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점점 대다수 국민, 특히 진보성향의 젊은 층의 지지를 얻었다. 반대로 진화되지 못하고 북한에 대해 적대와 대립의 태도와 냉전적 사고를 고수해온 보수층은 이번 선거에서 몰락한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의 정치 참여도가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도 정책방향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이 남북관계의 개선 노력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정책의 일관성 유지나 합의의 철저한 이행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은 한반도 평화의 ‘키 리졸브(Key Resolve)’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아내는 동시에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고립돼 있는 북한과 베일에 가린 국가지도자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서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지만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한 내부의 변화와 변화에 대한 욕구이다.
그동안 체제의 안전을 위하여 선군정치 노선을 채택하고 국력의 소모, 국제사회의 소외, 나라의 궁핍을 대가로 핵개발을 추진해왔다. 이제 6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기술을 보유하게 되고 핵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 오랫 동안 바랐던 북·미관계 개선의 절호, 혹은 최후 기회가 도래한 것이다.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도 더 이상 평화와 발전의 시대 흐름을 거역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소외된 나라로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엄준한 현실을 깨달아 선군 노선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감한 정권교체기의 불안을 극복한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외교행보와 연이은 북한 고위지도자의 중국 방문을 보면, 북한이 ‘북한 식의 개혁과 개방’으로 나가려는 결심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더 크고 더 신뢰할 만하다.
결연하면서도 유연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세가 북핵문제와 북·미 관계 개선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까지 미국은 북한을 ‘사악한 독재 정권’,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의 구호를 외치며 이데올로기의 색깔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트럼프는 때때로 강경한 제스처와 결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자국에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 역시 가장 큰 목적이다. 더욱이 이란 핵합의에 대해 폄하하고 이 합의를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핵문제를 원만하게, 더 잘 해결해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며 보란 듯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6·25 기념일은 형제상잔의 아픈 상처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을 즈음해 아픔을 되새기며 미움을 키우는 것보다는 이 아픔을 기억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통해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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