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20년 다시 돈을 풀어 자산거품을 키울 것이다. 경기가 기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면 부채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대니얼 세벌 미국 링컨대 재무회계학과 교수는 1일 인터뷰에서 이처럼 내다보았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1년 전만 해도 3%에 바짝 다가섰다. 올해에는 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가파른 경기 침체를 막으려면 돈을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미국은 내년 대선을 치른다.
사실상 무한대로 돈을 찍게 풀어준 배경에는 '그린 뉴딜'이 있다. 그린 뉴딜은 녹색산업을 지원해 일자리와 시장을 만든다는 경제정책이다. 10여년 전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관련정책에 힘이 실려왔다. 현대적인 통화이론도 그린 뉴딜을 옹호하고 있다. 과도한 인플레만 없다면 화폐를 찍어 경기를 부양하라고 말한다. 부채 자체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벌 교수는 이런 기조를 경계했다. 그는 "양적완화는 합법적이지만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채 증가→성장률 둔화' 역설
경기를 살리려고 풀었던 돈이 역설적으로 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세벌 교수는 "거시경제 성장세가 둔화된 것은 부채 때문"이라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318%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돈으로는 247조 달러 수준"이라며 "한 사람이 3만2000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얼마 전 올해 GDP 성장률 예상치를 2.3%에서 2.1%로 내렸다. 내년 예상치도 2.0%에서 1.9%로 나란히 하향 조정됐다. 유럽과 중국은 일찌감치 눈높이를 낮추었다.
미국이 오는 9월 양적긴축을 끝내겠다고 밝힌 이유다. 세벌 교수는 이를 양적완화로 풀이했다. 그는 "미국은 2월 일자리 수를 약 2만개밖에 못 늘렸다"며 "장·단기 미국채 금리가 역전됐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양적완화에 나설 시기로는 내년 1분기 또는 2분기를 꼽았다. 세벌 교수는 "양적긴축에서 양적완화로 바뀌는 데 6개월가량 걸릴 것"이라며 "양적완화는 인플레와 자산거품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상보다 빠르게 양적완화를 시도한다면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흥국 부채 갚기 어려운 수준
신흥국 부채비율은 더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세벌 교수는 "성장에 빚이 필요할 수 있지만, 신흥국은 갚기 어려울 만큼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를 나쁜 사례로 꼽았다. 그리스는 2004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을 치르느라 막대한 빚을 일으켰다. 세벌 교수는 "올림픽이 끝나면 버릴 건물을 짓느라 큰돈을 썼다"며 "나라를 키우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스는 올림픽을 치르자마자 계산서를 받았다. 공공부문 부채가 GDP 대비 100%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결국 2008년에는 유로존 재정위기를 일으키는 주범이 됐다.
스리랑카도 불안한 사례로 지목됐다. 이 나라는 세계적인 무역도시를 짓겠다면서 중국으로부터 14억 달러를 빌렸다. 새 도시가 홍콩이나 두바이 같은 국제무역 허브로 클 수만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세계 60위권 밖인 스리랑카 입장에서는 꽤 큰 모험일 수 있다.
세벌 교수가 신흥시장 투자에 신중하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미국 연준이 내놓은 '가장 혼잡한 거래(Most Crowded Trade)' 통계를 보면 올해 2월 가장 많은 투자자가 몰린 곳은 신흥시장이었다. 세벌 교수는 "한국 기관투자자가 손실을 줄이려면 신흥시장 비중을 5% 미만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주식시장 전망까지 어둡게 보지는 않았다.
세벌 교수는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며 "그래도 이런 예측이 이미 주식시장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팡(페이스북·아마존·알파벳·넷플릭스·구글)이 미국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다"며 "건전성 면에서 애플이 가장 뛰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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