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은 '콘텐츠의 힘'을 내세워 제조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SW 경쟁력 확보를 통해 충성 고객 유치에 나선 이유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한 애플은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업체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애플은 지난 3월 개최한 '애플 스페셜 이벤트'에서 TV 스트리밍 서비스, 뉴스·잡지 구독 서비스, 구독형 게임 서비스 등을 선보였다.
기존에 주력하던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의 하드웨어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복안이다. 애플은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해 아이폰 판매에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에서 아이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다. 반면 아이튠즈 등을 통한 서비스 매출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 4분기 109억달러(약 12조1971억원)으로 전년 대비 19% 상승했다.
앞서 일본 기업 소니도 이 같은 전략으로 기사회생했다. 소니는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등으로 승승장구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땐 무너져 내렸다.
2012년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CEO)는 취임과 동시에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오디오 등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했고, 이후 프리미엄 제품군 개발에 주력했다. 동시에 게임, 음악, 영화 등 콘텐츠 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년 만인 2017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는 최대 영업이익을 냈다. 2018회계연도에 역시 영업이익이 8942억엔으로 전년대비 22.0%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업계 관계자는 "디바이스는 더 좋은 사양의 제품이 나오면 제조사를 신경쓰지 않고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콘텐츠가 모여 있는 SW의 경우 한번 둥지를 튼 곳에 계속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제조업체들이 이 점에 주목해 SW 강화를 통한 디바이스 고객 확보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하드웨어에 주력하던 기업들이 콘텐츠로 승부를 거는 것은 스마트폰·노트북 등 디바이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미 살 사람은 다 사서 신규 구입은 사실상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디바이스에서 더 이상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도 한 요인이다. 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인해 제조사 간 차별성을 찾는 게 무의미해진 실정이다. 무엇보다 ICT기술을 기반으로 초연결시대가 열린 만큼 제조업의 영역 확장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아무리 SW 기술이 뛰어나도 HW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게 IT업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HW와 SW업체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앞으로 동종업체뿐 아니라 이종업체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에 반해 국내 업체들의 SW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 생활가전 시장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SW가 HW를 보조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콘텐츠로 영역을 확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라며 "앞으로는 SW 차별화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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