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중견기업은 4468개로 전체 기업의 0.7%에 불과하지만, 수출 규모는 909억 달러(약 106조원), 전체 수출액의 15.9%를 차지한다. 고용 측면에서는 중소업과 일대 일 비교 시 평균 80배에 달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 같은 성과를 빗대 중견기업으로 구성된 중견기업연합회를 '우리 경제의 등뼈 같은 존재'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30년 넘게 기업을 일군 중견 기업인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 안정감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외형적으로 회사 규모는 성장했지만, 2세가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은 중소기업보다 조직 규모가 크지만, 대기업과 비교하면 체계화된 시스템이 부족해 회사를 이끄는 경영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상속세 앞에서 회사 매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 중견 금속공작물 제조업체 대표는 “처음 사업 시작할 때야 돈을 벌 생각만 했지만, 이제는 회사를 위해 젊음을 바친 직원들을 위해 조직을 이끌고 있다. 남의 손에 안 맡기고, 대를 이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어도 상속세를 생각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상속세가 매우 높은 측면이 있고, 각종 편법으로 기업을 물려주는 기업이 나와 부의 세습에 대한 정당성이 부족해졌다. 꼭 아들딸이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나마 논의되는 내용도 사후관리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데 그친다. 가업상속공제 요건인 매출 3000억원을 넘는 중견기업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그림의 떡인 셈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의 승계가 일자리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정설로 자리 잡았다. 국가 전체의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명분 대신 실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가 됐다”며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개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속세를 조금씩 완화하는 방향이 아닌 독일 수준으로 확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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