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장이 충남삼성고 개교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지역에서는 삼성이 입시중심의 귀족학교를 만든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충남삼성고를 통해 ‘학교다운 학교, 교육다운 교육’을 실천하겠다는 삼성의 학교설립 취지에 공감, 이를 함께 실현해 가기로 결심한다.
충남삼성고는 자사고지만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재학생 70%는 충남에 근무하는 삼성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직원 자녀다. 외진 곳에 위치한 지방 사업장 근무자의 자녀들이 다닐 학교가 여의치 않자 삼성이 직접 나서서 학교를 만들었다. 나머지도 20%는 충남지역 사회배려자로, 10%는 충남지역 일반 학생들로 선발한다.
어느 정도 균질한 학생들이긴 해도 민사고나 외고처럼 최상위권 재원들이 입학하는 건 아니다. 박 교장은 5년 째 이런 학생들을 제련해 자기주도형 인간으로 교육시켜 사회에 내보내고 있다.
박하식 충남삼성고 교장은 사교육과 학교폭력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로 MSMP(Miracle of Sixty-six days Melting Pot) 프로그램을 꼽았다. 학교에서는 66일 기적의 용광로라 불린다. 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66일간 기숙사생활을 한다. 외출은 물론 집에도 갈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중학생 시기까지 가진 의존적 생활 습관을 바로잡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예절을 몸으로 익힌다. 아침 운동부터 인사 잘하기, 수업시간 준수까지 학생들은 하루하루 달라진 모습의 자신을 만난다. 점이 연결돼 선이 되듯이. 박 교장은 교사들과 새벽 운동에 나서는 아이들에게 매일 밝은 인사로 격려한다.
벚꽃이 만발할 무렵, 학생들은 그리운 부모님을 한 번 만난다. 학교가 벚꽂제를 열어 가족을 초청하는 것. 박 교장은 이날 부쩍 성장한 자녀들의 모습에 학부모들이 많이 놀라고 돌아간다고 귀띔했다.
MSMP의 하이라이트는 세족식. 학생들은 발을 씻어주는 선생님을 보며 환히 웃기도 뚝뚝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렇게 66일을 버텨낸 학생들은 자신을 관리한다. 자존감이 높아진 학생들이 먼저 사교육을 끊고 상대를 배려한다.
교사의 가장 큰 덕목은 교육이다. 충남삼성고 교사는 행정 잡무에 시달리지 않는다. 교사수에 버금가는 행정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오롯이 학생에 집중할 수 있다.
교사가 온전히 교육에 집중하는 데는 자율수업제도도 한 몫 한다. 문이과 구분도 넘어섰다. 자연과학·공학·IT·생명과학·국제인문·사회과학·경제경영·예술체육 등 8개 진로 트랙에 의해서 시간표를 짠다. 학생들은 개인별 수준과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매 시간 이동수업을 한다. 교사는 학생과 수시로 만나 진로를 논한다. 일부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교학점제가 충남삼성고에서는 이미 정착된 셈이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수업에서 박 교장은 국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 학년이 300명이니 한 반을 30명으로 구분하는 건 행정적인 의미 이상은 없어요. 그런데 한국 교육은 그 단위에 맞춰 교육을 합니다. 단지 1반이라는 이유로 똑은 수업시간표에 맞춰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가요? 학생들도 듣고 싶은 수업을 듣게 해 줘야죠.”
이런 이유로 박 교장은 고등학생을 ‘예비성인’으로 존중하고, 입시를 넘어서는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등학생은 중4, 중5가 아닙니다. 예비성인이에요. 대학 문턱만 바라보고 그 시기의 삶을 유예하니 대학에 가서 비정상적인 문제들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합니다.”
박 교장은 충남삼성고의 모델은 외국 학교가 아니라고 말한다. ”법인의 지원에 힘입어 2009 교육개정에 있던 걸 실천했을 뿐입니다. 모든 고등학교가 입시에 매몰돼 따르지 않았던 거죠.” 학교법인 이사회 전반이 sky 입학률로 교사를 압박하는 일도 전혀 없다는 점도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자사고’ ‘삼성’이란 두 꺼풀 편견을 벗고 본 충남삼성고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낸 공교육의 이상을 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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