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8-6]자국을 ‘해’ 아닌 ‘달’로 비유하는 세계 유일 國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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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9-12-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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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하늘 '공활'한데"…'공활'은 한국서 사어…반면 일본선 활어

  • 낮 하늘이 아닌 밤 하늘을 노래하는 '애국가'

  • 전 세계 각국 國歌 중 유일하게 '달'이 등장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한국의 국가 <애국가> 3절

∙ 우리는 타국의 피광체 달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태양이다!
-페루의 국가 <우리는 자유다>

∙ 아침의 나라 동쪽 나라에 가슴의 불은 타오르도다. -필리핀의 국가 <아침의 나라>

∙ 학문은 세상 모든 마침표를 의문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지식이 멈춘 곳 전제를 해버린 곳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당연히 '사실'로 여겨지던 것에 의문을 제기해볼 때 알지 못했던 새 세상이 열린다. -강효백


◆“가을 하늘 공활한데?"

자랑할 거라고는 가을 하늘 하나뿐인 우리나라였다. 그만큼 가을 하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은 난해한 한자어 ‘공활?’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밝은 달? 왜 하필이면 눈이 부시게 푸른 대낮의 가을 하늘이 아니라 어두운 가을 하늘을 노래해야 하는가? 그것도 해 아닌 달을 국가로 노래해야 하는가?

‘공활(空豁)’. 솔직히 서른이 다 돼서도 ‘공활’이 무슨 뜻인 줄 몰랐다. 그저 가을 하늘에 높이 떠다니는 공 같고 활 같은 구름의 일종인 줄 알았다. 후일 중국에서 고문을 펼쳐보다 처음 알았다.

텅 비고 매우 넓다를 뜻함을 의미하는 ‘공활’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인 완적(阮籍, 216년~263년)의 '달장론《達莊論》'에서 처음 나타난다. 명 나라 시인이자 지리학자 서홍조(徐弘祖, 1587년~1637년)의 '《서하객유기 오서유일기徐霞客游记·粤西游日记》'를 끝으로 사라진 이른바 사어(死語)다. 사어란 일명 폐어라고 하는데 더 이상 모국어로서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언어 또는 과거에는 쓰였으나 현재에는 쓰이지 않는 단어를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사어를 '구어로서의 사어'와 '문어(문장어)로서의 사어', 그리고 '완전한 사어'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활은 현대 중국에서 구어로도, 문어로도 쓰지 않는 완전한 사어다. 한국에서 공활은 사어나 마찬가지이지만 애국가 가사 3절에만 살아 있는 아주 희귀한 단어다.

그러나 일본에선 14세기 무로마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일본인의 입에서 살아있는 활어(活語)다. 현대 일본의 저명한 서예가 홋카이도 교육대학 아오키 히데아키(青木英昭)교수의 아호 역시 ‘공활’(空豁)이다.

‘공활’ 아래한글 워드로 타이핑을 치는 지금 이순간에도 ‘공활’ 글자 아래는 빨간 줄이 그어진다. 맞춤법에 틀린 부분에 그어지는 빨간 줄이다.

◆낮의 하늘이 아닌 밤하늘이 나오는 <애국가>

필리핀 국가 <아침의 나라 (Land of the morning) >

아침의 나라 동쪽 나라에/ 가슴의 불은 타오르도다.
사랑의 나라 영웅이 태어나/ 적이 나타나면 무찌르로다.
푸른 하늘, 바다를 불어오는 바람에/ 나의 자유의 노래는 울려 퍼지리
승리로 이끄는 우리의 국기/ 그려진 별과 해는 영원히 빛나리
아름다운 땅 빛의 땅 / 영광과 사랑, 태양의 나라여,
그대 품속에 천국이 있도다 / 그대를 위협하는 적이 있으면
이 목숨 기꺼이 그대에 바치리라.

이 필리핀 국가 '아침의 나라'는 훌리안 필리페(Julián Felipe) 필리핀 독립혁명군 군악대장이 1897년 작곡한 음악에, 필리핀 독립혁명군 장교이자 시인 호세 팔라(José Palma)가 1898년에 시를 붙인 것이다. 1898년 6월 12일 필리핀 국가로 채택됐고, 1958년 5월 26일 국가로 입법화(official Filipino lyrics)됐다.

필리핀 국가의 제목과 가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자주독립국이라면 이런 제목과 가사 정도가 애국가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필리핀 국가에서도 보다시피 유엔회원국 193개 국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물질명사는 빛, 하늘, 태양, 별, 땅, 바다, 산, 강, 불, 피 등이다. 세계 각국 국가에서 나오는 ‘하늘’은 새벽하늘이거나 아침 하늘 이거나 낮의 하늘이다. ‘빛’은 태양의 빛이거나 별의 빛이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우리나라 <애국가> 3절처럼 해나 별이 아닌 달이 떠 있는 어두운 밤하늘이 나오는 세계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세계 각국 국가(國歌)엔 달이 전혀 없다.

우선 국기와 더불어 주권국가의 양대 상징인 국가를 살펴보자

해와 별이 그려진 국기가 많다. 태양 문양이 있는 국기는 일본, 나미비아, 말라위, 북마케도니아, 아르헨티나, 앤티가 바부다, 르완다, 대만,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방글라데시, 팔라우, 네팔, 키리바시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등 모두 15개국이다.

별을 큰 별 국기에 커다란 별을 하나 달아놓는 국기는 북한, 베트남, 소말리아, 미얀마, 동티모르, 모로코, 칠레, 토고, 콩고 민주 공화국, 라이베리아 등 10개국, 별이 두 개 이상인 국기는 미국, 중국, 브라질, 시리아,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파나마 등 7개국, 남십자성이 들어간 국기는 호주, 뉴질랜드, 서사모아, 미크로네시아, 파푸아뉴기니 등 5개국, 주로 남태평양상 국가들이다.

그리고 국기에 항성인 별과 함께 희망과 성장을 상징하는 초승달 문양을 넣은 국가들(주로 이슬람 국가)은 있다. 파키스탄, 알제리 , 말레이시아, 모리타니, 터키, 리비아, 튀니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싱가포르 등 10개국이다.

그런데 국기와 달리 국가엔 초승달은커녕 상현달이든 하현달이든 그믐달이든 보름달이든 달은 전혀 없다. 한국의 애국가만 단 한나라만 빼놓고 세계 210개 국가(유엔회원국 193개국, 비유엔회원국, 유엔미승인국 포함) 가사에 해 아닌 ‘달’(月 moon)이 나오는 경우는 전혀 없다. 왜 그럴까?

해는 낮에 솟지만 달은 어두운 밤에 뜬다. 해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기로 충만되지만, 달은 차가우면서도 가냘픈 한기(寒氣)로 가득 차 있다. 해는 둥근 모습으로 매일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지는 변함 없는 존재이지만, 달은 소멸했다가 부풀었다가 다시 소멸하는 가변적 존재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 명절인 경우가 많으며 한국의 경우 정월 대보름엔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하지만 달을 태양처럼 숭배하지는 않는다.

서양에서 달은 광기와 비합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왔다. ‘미치광이(lunatic)’라는 단어는 달의 형용사 라틴어 ‘루나(lunar)’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보름달이 사람의 뇌에 작용하여 광기를 유도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서양과 중근동에서는 보름달 아래에서 마귀들이 축제를 벌인다고도 하고, 보름달이 뜨는 날엔 늑대인간이 돌아다니고, 보름달을 보면 미친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도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종말의 징조와 관련되어 언급되고(요한계시록 6장 :12절), 달이 불행과 질병의 원인임을 시사한다(마태복음 4장:24절)

서양점 타로에서도 18번 달 그림이 나오는 궤는 '불안’, ‘동요’, ‘변덕’, ‘권태’, '우울', '기다림', '불투명'을 의미하는 가장 나쁜 궤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세계 각국 국가에 달이 없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해와 별은 항성이나 달은 위성이기 때문이다. 해와 별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인 반면, 달은 햇빛을 받아 반사함으로써 피광체이기 때문이다. 달은 스스로 회전하지 못하고 태양과의 관계, 그리고 지구를 비롯한 다른 별과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입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가사 서두에 자기 나라는 피광체가 아니고 발광체 태양임을 선언하는 국가도 있다.

페루 국가 <우리는 자유다! (Somos libres!, We are free!) >

우리는 자유다! 우리는 영원하다! / 우리의 영원은 영원이다!
우리는 타국의 피광체 달이 아니다. / 우리가 바로 태양이다!
태양은 장엄한 선서를 한다./조국은 영원히 태양처럼 떠오른다.
영원한 조국의 영원한 웅비를 위하여/ 장엄하게 선언하노라.
조국의 웅비를 위해 성심을 다하고/ 영원히 조국을 사랑하리라.

◆구름없이 높고 맑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세계 각지 각국 신화의 최고신은 태양신이 절대다수다. 우리나라 단군 할아버지 환인을 비롯해 이집트의 아톤, 힌두교의 수리야, 잉카의 인티, 로마의 무적의 태양신 솔인빅투스, 아즈텍과 잉카문명의 최고신 5월의 인티, 모두 태양신이 그 문화의 주신이다.

반면에 달을 최고신으로 받드는 신화는 단 하나도 없다.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御大神) 역시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토 최고의 신이자 천황가의 조상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달의 신 츠쿠요미 노미코토(月読尊)는 태양신 아마테라스나 바다와 태풍의 신 스사노오 노미코토(建速須佐)와 대등한 위치에 놓인 중요한 신으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별로 없다.

태양신 아마테라스는 광명과 주동의 상징이지만 달의 신 츠쿠요미는 암흑과 피동의 표징이다. 츠쿠요미의 '츠쿠요미'의 '요미'는 일본에서 말하는 저승과 지하세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전역에 널린 8만여개소의 신사중에 달의 신 츠쿠요미를 주신으로 모신 신사는 단 하나도 없다. 다만 술의 신을 모시는 신사로 유명한 교토의 신사 마쓰오 타이샤(松尾大社)를 설명할 때 이 신사의 한 귀퉁이에 츠쿠요미를 배향한 곳이 있다는 정도다. 츠쿠요미는 『일본서기』 제5단 제11에 인용된 '일서(一書)'에서 곡물의 기원을 말하면서 잠시 언급된다. 그리고 오늘날 시네마현 북동부 이즈모(出雲)지역에서 733년에 편찬한 지방풍토지 『출운국풍토기』(出雲国風土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달의 신 츠쿠요미는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청명심, 단심(丹心), 경외심으로 모셨다”
“구름 없이 높고 맑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애국가 3절 악마의 코드가 풀리는 순간이다. 높고 맑은 청명심을 지닌 달의 신 ‘츠쿠요미’처럼 일장기와 욱일기로 형상화한 태양신 아마테라스와 그의 후손 천황을 일편단심으로 충성을 다해 모시자는 의미다.

1907년 애국가 작사 당시 대한제국은 대일본제국의 보호국이었다. 발광체 태양 대일본제국의 빛을 받고 살아가는 피광체 달 위성국이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애국가 작사자는 일본의 위성국이자 보호국 대한제국의 처지를 정확히 반영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 10위권 중견강국이자 당당한 주권독립국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태양 일본에 대해 일편단심 충성맹세가를 애국가로 계속 부를 것인가?

끝으로 관계 당국에 호소한다. 다시 한번 페루 국가 <우리는 자유다!>의 “우리는 타국의 피광체 달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태양이다!”를 음미하고 부끄러워하고 대오각성하고 새로운 진짜 대한민국 국가를 제정하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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