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에너지안전보장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 화두는 두 개의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코로나19 쇼크가 자국내 에너지 안보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미시적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 에너지 패권싸움을 주시하면서 거시적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코로나19가 집단적으로 발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기조차 두려운 사건이다. 에너지는 우리의 생활을 지탱하는 혈액과 같은 것이어서 한시도 멈추면 안된다. 에너지를 국가안전보장 차원에서 바라보는 이유다. 에너지 안전보장은 지금까지 전쟁과 같은 군사적 위협과 테러 등 폭력에 의한 연료의 공급단절에 주목했었다. 에너지 관련 시설에 대한 위협요인은 다양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난해 9월 유전시설이 드론에 의한 상공으로부터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발전소를 노리는 사이버공간의 공격도 크게 늘고 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2011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와 2018년에 홋카이도 전역이 정전된 블랙아웃은 에너지 인프라 기업들에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에 철저하게 대비해야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에너지 안전보장에 관한 한 일본만큼 신경을 쓰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최근 일본 원자력발전소에서 일본정부를 초긴장상태에 빠뜨린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일 인구 8만명의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5명 발생했는데 모두 도쿄전력의 직원과 그 가족이었다. 이 시에 있는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안전대책 공사를 위해 4000명가량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공사 관계자들의 잇따른 코로나19 감염으로 작업의 80%를 중단시켰다. 규슈전력의 겐카이원전에서도 공사 관계자의 감염 확산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이 두 원전에서 진행하던 것은 최근 들어 잦아진 재해와 테러 리스크에 대비한 공사였다. 이것을 코로나19가 정지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코로나19 감염에 잘못 대응하면 에너지 안정공급에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도쿄가스는 지난 2월말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의 ‘비접촉형 하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해외로부터 운반된 LNG는 입수기지에서 하역한 뒤 기체로 바꾸어 도시가스로 공급한다. 지금까지는 기지 관계자가 LNG선에 승선해 검량과 하역을 지켜보았으나 이 작업을 전화와 화상으로 대체하고 육상과 배의 접촉을 가능한 한 줄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도쿄만과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 있는 4개 기지 모두 비접촉형 하역을 실시하고 있다. 자칫 감염으로 기지기능이 마비되면 공급 장애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도쿄가스는 하역방식을 바꾸면서 수송선이 도착해 항구를 떠날 때까지 약 2시간 더 걸리고 있지만 문제는 없다고 한다. 일본정부가 긴급사태선언을 해제한 후에도 이 방식을 계속하고 있다. 비접촉형 하역이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 사업자에 있어서 종사자의 안전확보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감염자가 나와도 공급을 중단하지 않는 운영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에너지 안전보장을 유지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이다.
자연재해가 한층 빈번하게 발생하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는 한국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한 에너지 안보체제를 재점검해 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에너지안보에 관한 시각을 국제 원유시장으로 돌려보자. 경제활동 재개의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면서 대폭락을 겪었던 원유시장이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심각한 수요감소 현상이 일어난 원유시장이 특히 혼란에 빠졌던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의 중심은 석유였다. 코로나19 위기가 몰고 온 것은 전후(戰後)의 에너지 질서, 즉 1945년 미국이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대신 사우디는 미국에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해주는 ‘미-사우디 석유체제’가 변한 것이다. 지금은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이 체제가 붕괴한 채 이를 대신할 체제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석유의 시대’ 뒤에 에너지 전환의 모습도 어른댄다.
코로나19 위기는 세계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서플라이 체인(공급사슬)의 약점을 드러냈다. 석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위기 전의 전망치인 하루 1억 배럴로 수요회복이 되려면 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그 사이에 새로운 생활양식이 정착하면서 인적·물적 이동에 따른 석유 수요는 곧바로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체하는 것은 네트워크와 휴대전화 등의 디지털 기술이다. 디지털화된 사회는 에너지를 전기 형태로 소비한다. 전동화(電動化)에 대비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정비할 필요성이 높아진다. 탈(脫)탄소의 파고 아래서 전력공급원으로서의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역할은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에 대기하고 있는 것은 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그린 테크놀로지’가 디지털 기술과 융합하는 에너지전환의 가속이다. 그러한 시대가 되면 석유를 둘러싼 대립과 불화를 반복해 온 20세기의 에너지 지정학으로부터 해방된다. 일견 소망스러운 시대의 도래다.
이에 대해 에너지 전문가인 마쓰오 히로부미 일본경제신문 편집위원은 빼놓을 수 없는 체크 포인트를 제시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각각의 나라에서 조달할 수 있는 국산자원으로 그 인프라가 되는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기, 이들을 제조하는 재료와 자원의 확보에 병목(bottleneck)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한 통계를 보면 세계 태양광 패널의 60%는 중국기업이 공급한다. 풍력발전용의 풍차는 상위 10개사 가운데 5개사가, 전기자동차(EV)용 차량탑재 전지의 상위 10개사 가운데 7개사가 중국 기업들이다. 중국은 희귀 자원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스마트폰 1대에는 40개 종류의 레어메탈(희소금속)이 필요하다. 전기자동차(EV)와 풍력발전기의 모터 제작에 불가결한 레어어스(희토류 금속)를 포함한 희소금속 생산지는 90% 이상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마쓰오 위원은 <레어메탈의 지정학>의 저자 기욤 피로톤의 말을 인용해 “세계가 레어메탈을 한층 필요로 하게 되는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은 종래의 에너지 지정학적 문제를 종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디지털로의 전환은 ‘유전의 쟁탈전’에서 ‘레어메탈 광산의 쟁탈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얄타 체제 하에서 일찌감치 중동을 제압한 미국처럼 새로운 세계 질서를 겨냥하고 있는 중국은 에너지의 차세대 기술과 자원을 제압하려 한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대립의 최전선이다. 코로나19 이후 에너지공급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 이에 따른 리스크를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 석유의 시대가 지나도 해방될 수 없는 에너지안전보장에 우리도 대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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