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불안한 정국이 다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 반정부 시위대는 6년째 집권중인 군인 출신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뿐 아니라 오랫동안 금기시된 태국 왕실개혁 문제까지 들고 나섰다. 과거 집회가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서민층 '레드셔츠'(red shirts)의 주도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20~30대 직장인들이 나섰다. 이에 왕당파 지지세력 '옐로셔츠'(yellow shirts)가 군주제를 모욕하는 사람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대응을 주장하며 세몰이와 반격에 나서고 있다. 1932년 태국은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되면서 형식상으로 주권은 국왕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신세대 젊은층은 몰라도 중장년층은 오랫동안 국왕을 '신'(神) 또는 '국민의 아버지'로 여기고 살았다. 노랑색은 태국의 왕실을 상징한다. 친정부 '옐로셔츠' 세력이 국가의 안정을 위해 왕실이 절대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왕권수호에 나서고 있다.
불교국가인 태국은 국민들의 왕실과 국왕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매우 강한 국가이다. 정치적.외교적 위기 때마다 국왕은 적극 나서며 나라의 구심점이 되었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는 나라인데 국민들은 이를 국왕의 훌륭한 정치력과 외교력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율 브리너 주연의 추억의 명화 '왕과 나'(1956)는 시암(태국의 과거 국호)의 국왕 라마4세(1851~1868년 재위)와 영국에서 건너온 여교사(데보라커)와의 로맨스를 다루었다. 이 영화가 태국에서 아직도 상영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에서 태국의 독립을 지키고 문호를 개방하여 근대화의 길로 이끈 라마4세가 다소 거칠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부분들 때문이다. 태국에서 왕실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태국 형법 112조의 '왕실모독죄'는 "국왕을 숭배해야 하며, 어떠한 이유에서도 국왕을 비방하거나 명예훼손을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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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국민 다수는 세계 최장인 70년의 재위 기록을 가진 푸미폰 국왕을 구심점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태국의 시위대가 '신성 불가침적' 영역인 군주제 개혁까지 들고 나온 배경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관광산업이 멈추며 실업자가 수백만명 발생하는 등 경제가 최악인데도 호화생활로 물의를 빚어온 현 국왕인 라마 10세(마하 와치랄롱꼰, 68세)에 대한 실망감 때문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태국 정부 예산에서 로열오피스(Royal Office)로 배정된 왕실 예산은 90억 바트(약 3400억원) 2018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외유를 즐기는 국왕은 수십대의 항공기와 헬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왕실 예산의 20% 이상이 항공기의 연료비, 유지 보수비 등에 투입되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창궐 시 태국을 떠나 독일 알프스 리조트에서 수십명의 여성 수행원과 휴가를 보내는가 하면, 헌법을 바꿔 태국을 섭정 통치해 독일 정부의 항의도 받았다. 수출과 관광수입이 주도하는 태국경제는 지난 2분기 마이너스 12.2%를 기록했다. 올해 전체로는 마이너스 8%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태국 국왕은 재산이 400억 달러(약 46조원)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로 꼽히고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 이후 태국은 국왕 개인 재산과 왕실 자산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왕실자산국(Crown Property Bureau. CPB)을 설립했다. 지난 2018년 6월 16일 태국 CPB는 매우 이례적인 발표를 내놓는다. 80년 이상 CPB가 관리하던 모든 왕실재산을 마하 국왕 명의로 돌린다는 내용이었다. CPB는 방콕 번화가의 주요 부동산뿐 아니라 태국의 주요 기업인 시암시멘트그룹(Siam Cement Group, SCG)과 이 기업의 최대 채권자인 시암상업은행(Siam Commercial Bank, SCB)의 상당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빅 뉴스'가 당시 CPB 웹사이트에 보일듯 말듯 조그마하게 실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왕실예산 문제와 함께 부각되고 있다. 시위자들은 태국보다 독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국왕에게 왜 막대한 공적 자금이 지원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왕실 예산의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군부가 '왕실모독죄'라는 칼을 휘두르고 있어 태국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태국의 경제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로 빠진 부의 양극화는 최대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2018년 크레딧스위스(Credit Suisse)의 글로벌 웰스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에 따르면 태국은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90.2로 아세안 국가 중에서 1위이다. 세계적으로는 우크라이나(95.5), 카자흐스탄(95.2) 이집트(90.9) 다음으로 4위이다. 태국 성인의 91.9%가 연소득이 1만 달러 미만이다. 반면 태국 상위 1%가 전체 부의 2/3를 가지고 있다. 과거 1980~90년대 태국은 아시아에서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였다. 이후 1인당 GDP가 중국에 추월당하고 한국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 사회적 불안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진 결과로 보인다.
최근 외신 보도를 보니 태국 경찰은 총리퇴진과 개헌 그리고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했다. 시위대 인근에서는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상의를 입은 시위대가 군주제 수호 구호를 외쳤다. 태국사회의 현 모습이다. 그런데 유난히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지난 1일 마하 국왕이 왕궁 밖에서 지지자들을 격려하면서 시위대에 정치적 제스쳐를 보냈다는 내용이다. 그는 일부 해외언론으로부터 민주화 시위대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들도 똑같이 사랑한다"면서 "태국은 타협의 땅"이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CNN은 국왕이 이날 타협을 언급한 것은 장기간의 교착 상태를 풀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외신들이 태국 국왕의 시위대를 보는 발언도 발언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권위를 대폭 낮춘 국왕의 행동이라고 보도했다. 별세한 푸미폰 국왕을 포함 태국 국왕이 언론사 기자의 단독 질문에 바로 응답한 경우는 수십년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에 못 보던 태국 국왕의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왕은 이날 수티다 왕비와 팔짱을 끼고 노란색 옷을 입은 지지자들 사이로 지그재그로 돌며 군중의 연호에 화답했다. 국왕은 중 고교 1학년 남학생이 ”셀프 카메라를 찍어도 되냐”고 하자 “그럼” 하며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군주제 개혁까지 나오는 시국에 마하 국왕은 왕실도 몸을 낮추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듯하다.
2014년 잉락 친나왓 총리를 축출하고 탄생한 태국의 현 군부정권은 태국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 해소를 통한 국민 화합과 조속한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그러나 2017년 군부의 정치 개입을 허용하는 새 헌법이 반포되면서 태국 민주주의는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태국 헌법은 상원의원 250명을 정부가 지명하도록 하고 있다. 하원의원 500명 중 350명은 지역구 유권자들의 직접 투표, 나머지 150명은 정당 비례대표로 선출된다. 그런데 상하원 의석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 집권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여당 후보에 유리하다. 쁘라윳 총리는 '민정 이양'에 관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스스로 총리가 된 데 이어 작년 3월 총선 당시 연임에 성공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올해 2월 젊은 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던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 해산된 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반정부 시위가 3개월 이상 계속되자 쁘라윳 총리는 지난달 15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태국의 Z세대가 주축인 이번 민주화 시위대는 과거와 달리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게릴라식 전법을 구사하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사퇴불가'에서 요지부동이다. 과거 군부정권시절 우리 민주화시대 겪었던 진통이 생각난다. 우리에겐 군부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1:1 대결이었는데, 태국은 좀 복잡하다. 왕실과 군부의 밀월관계 종식은 현실적으로 쉽지않다. 그리고 열렬한 왕실지지파와 도시의 중산층이 포함된 기득권층,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농민과 소외계층 그리고 거침없이 자유와 정의를 열망하는 신세대 젊은 학생들로 분열되어 있다.그래서 태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 우리보다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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