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살인?
사형제는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수단으로,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한 이래로 오랜 시간 역사 속에 존재했다.인류 최초로 사형제를 성문화(成文化)한 법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으로, 25개의 범죄를 사형으로 처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8조 법금(法禁)에 의거해 살인을 저지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고 명기돼 있다.
과거에는 사형 집행방식이 다소 잔혹했다. 가장 잘 알려진 사형은 기원전 5세기경 로마법이 규정한 '십자가형'이며, 가장 유명한 수형자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의 사약과 교수형, 참수, 능지처참 등이 있었지만 1894년 갑오경장 이후로는 교수형만 집행되고 있었다.
사형제의 실효성을 처음으로 부정한 이는 다름 아닌 '왕'이었다
끔찍한 죄를 지은 자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고자 하는 대중 심리의 맞은 편에는 사형제의 실효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 나아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역사상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이는 11세기 영국의 '정복왕' 윌리엄 1세였다. 전쟁으로 인해 농업에 종사할 국민들이 대거 희생됨에 따라 윌리엄 1세는 "전시(戰時) 이외의 사형을 폐지한다"고 발표했으나, 전쟁이 끝나는 시점을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제도적 차원'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이는 이탈리아의 계몽 사상가 베카리아였다. 베카리아는 1764년 발간한 <범죄와 형벌>을 통해 국가에 의한 살인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베카리아의 주장에 큰 감명을 받은 토스카나의 대공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였던 레오폴트 2세는 1786년 11월 30일 사형제를 전격 폐지할 것을 선언했다.
레오폴트 2세는 소박하고 성실한 성품을 가졌으며, 전란에 휩싸인 당시의 유럽에서 탁월한 외교 수완을 통해 자국의 평화를 지켜낸 황제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역사가 폴 슈로더(Paul W. Shroeder)는 그를 "왕관을 착용한 가장 영리하고 현명한 군주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786년 11월 30일은 인류 최초로 국가에 의해 사형제가 폐지된 날로, 이후 전 세계적인 사형제 폐지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함무라비 왕과 레오폴드 2세. 법 제도에 의한 사형을 최초로 만든 이도, 최초로 폐지한 이도 모두 '왕'이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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