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1/02/06/20210206191805948551.jpg)
노희진 SK증권 감사위원 [사진=노희진 위원 제공]
"공매도 문제를 선악의 관점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 공매도 자체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존재하는 하나의 금융기법에 불과하다. 단순히 반대 여론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폐지를 논의해선 안 된다. 전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폭락장 당시 시작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해를 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두 차례 연장 결정이 내려지는 사이 금융당국과 각계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제도 개선안이 발표됐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는 5월부터 일부 대형주에 한해 다시 공매도가 재개될 예정이지만 추가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본지는 노희진 SK증권 감사위원을 만나 공매도 문제의 본질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해결방안에 대해 물었다. 노 위원은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책제도실장 등을 거치며 헤지펀드와 기후금융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국내 증시를 연구해 온 자본시장 전문가다. 7일 만난 노 위원은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비판에도 일리는 있지만, 전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고려했을 때 공매도 폐지 논의는 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매도 문제, 전체 시장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주식을 빌리지 않고 매도 주문을 내는 무차입 공매도(네이키드 쇼트셀링·naked short selling)는 감당하지 못할 물량을 매도했다가 결제가 이행되지 않는 사태를 유발할 수 있어 지금처럼 금지하는 것이 맞는다. 다만 미리 빌려온 주식을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커버드 쇼트셀링·covered short selling)는 순기능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공매도는 결국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행위를 허용해주는 '차입매도'인데,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물량이 늘어날 경우 일정 수준의 가격 하락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현재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장 공급 증가로 인해 가격이 하락한다고 생각하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단기적으로 매도 물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공매도가 반드시 가격 하락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빌린 주식을 다시 사들여서 갚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매수 물량도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 위원은 "현재 공매도를 하는 사람은 결국 미래 특정 시점에 빌린 주식을 갚기 위해 매수 주문을 내야 한다"며 "공매도 시점에서는 매도 주문을 내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 전체의 유동성이 증가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시장이 발전하려면 많은 거래량과 풍부한 유동성을 토대로 수요와 공급에 따른 적정한 가격 형성이 중요하다"며 " 공매도를 통해 시장 전체의 매도·매수 주문이 모두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에서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 위원은 다양한 시장 주체를 고려했을 때 공매도 제도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에는 기업의 현재 주주는 물론 잠재적 투자자, 공매도 투자자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이다. 높은 성장성을 갖고 있지만 현재 주가가 과대 평가된 기업이 있다면, 공매도로 설령 가격 하락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잠재적 투자자들은 이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노 위원장은 "고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고자 하는 투자자라면 공매도로 과열된 가격이 내려간다면 오히려 환영할 것"이라며 "어떤 제도의 규제를 논하려면 전체 시장과 다양한 투자자들을 고려해 정책의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가 오히려 과열 부추길 가능성도 있어
일반적으로 공매도 잔고가 급증할 경우 해당 기업의 주주들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들이 모르는 기업 내부의 정보가 있는지, 혹은 인위적인 주가 하락을 유도하려는 세력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소위 '작전'이 횡행하는 국내 투자문화 때문에 공매도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노 위원은 공매도로 인해 일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맞는다고 설명했다. 거래량과 유동성이 적은 종목들의 경우 과도한 매도 주문이 쏠리면서 인위적인 주가 하락, 투기적 거래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부작용은 금융당국이 적절한 제도 설계를 통해 보완해야 하는 단점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이를 이유로 제도의 폐지까지 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부 중소형 종목이나, 거래량이 적은 대형주의 경우 공매도가 적정한 가격 발견이 아니라 오히려 주가 하락을 초래한다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그러나 이런 점까지 고려해봐도 시장 전체의 효율성 증가에 기여하는 면이 더 크기 때문에 해외 주요국에서도 공매도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도 공매도 잔고가 급증한 종목을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거나 금융위기가 오면 공매도를 일시 금지하는 조치 등 다양한 장치들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며 "국내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순기능만을 극대화하려는 고민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나 학계에서는 공매도가 금지된다면 오히려 주가 부양을 노린 투기적 거래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공매도가 금지되면 '테마'나 '호재'를 내세우며 인위적인 주가 상승을 노리는 세력들이 더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노 위원 역시 "소형주의 경우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의 가능성과 매수를 유도해 인위적 주가 부양이 일어날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며 "어느 한 가지 가능성을 놓고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할 순 없으며 시장 상황을 고려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본질은 신용의 차이
공매도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꼽힌다. 공매도를 하려면 먼저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기관투자자들의 대차시장에 비해 개인들의 대주시장 접근성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도 이런 지적을 고려해 현재 한국증권금융을 중심으로 개인들에게 확대된 대주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개선안을 내놓은 상태다.
노 위원은 개인들의 공매도 접근성을 제고할 필요는 있지만, 증거금이나 상환 기간 등에서 동일한 조건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상환 조건이나 이자가 차이나듯이 주식을 빌리는 경우도 투자자의 신용도와 능력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예컨대 증권사가 채권 발행을 할 때도 회사 규모나 자금의 차이에 따라 조달 비용이 다르다"며 "대주시장과 대차시장의 조달 비용이 다르냐고 따진다면 결국 신용과 상환 능력의 차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차거래에서 증권사들은 105%의 증거금을 담보로 잡고 주식을 빌린다. 개인투자자들의 대주거래의 경우 통상 140% 수준이다. 상환기간은 개인은 30~60일로 정해져 있으나, 기관들은 만기가 와도 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기관 간 대차거래의 경우 언제든지 상환 요청이 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거래 조건의 불평등이 아니라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의 특성이 다르기에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노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 국채와 한국 국채의 가격이 다른 것처럼 투자자들 사이에도 신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비교 범주를 기관과 개인으로 놓았기 때문에 불공평해 보이지만 본질은 신용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상환 기간을 조정하거나, 증거금 차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은 가능할 수 있지만 단순히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