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 부유층의 자산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부유세 부과 필요성 논의가 재점화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세계 500대 부자의 자산액은 2019년 말 대비 31% 증가한 7조6000억달러를 기록했다.
최상위 부자들의 자산이 늘어난 것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실업자가 증가했으며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다.
보고서는 "부유세 부과 방식으로는 자산세, 최고소득세구간 신설, 금융거래세, 상속세, 양도소득세 등 5가지 방안을 상정할 수 있다"며 "진보주의 정당이 집권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소득세보다는 자산세에 초점을 맞춰 한시적으로 부유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잇따라 제안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의회는 일회성 부유세 부과 법안을 통과시켰다. 2억페소(약 26억원)가 넘는 재산을 보유한 1만2000여명에게 최대 자산의 5.25%의 세금을 내도록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부유세로 3000억페소를 확보할 계획이다.
부유세로 시행착오를 겪은 유럽에서도 다시 부유세 도입 논의가 재개됐다. 앞서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자산 평가 애로와 불필요한 비용 발생, 부유층의 국외 이탈, 조세회피 성향 강화 등을 지적하면서 부유세가 폐지됐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세수 부족에 직면해 부유세 부활 논의가 재개됐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상위 자산가를 보유한 국가다. 집권당인 기독민주당은 부유세 부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으나 사회민주당이 부유세 부활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부유세 도입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은 4500억 파운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정수지 적자에 직면한 상태다.
이에 영국 경제학자들이 세금정책 연구를 위해 설립한 연구기관인 부유세위원회는 "K자형 빈익빈 부익부 형태의 회복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해소 방안의 하나로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부유세위원회는 50만 파운드를 상회하는 자산을 보유한 800만명을 대상으로 매년 자산의 1%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렌과 버니 샌더스 등 상원 의원이 부유세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세계 10대 부자 중 6명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를 중심으로 부유세 부과 필요성 목소리가 나온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순자산 3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3만여명에게 순자산의 0.4%에 부유세를 과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워싱턴 주는 미국에서 소득세가 없는 주 중 하나로 과세 역진성을 해소하기 위한 부유세 도입이 검토되는 상황이다. 워싱턴주 의회는 10억 달러 이상의 주식 등 금융투자자산이나 무형금융자산에 1%의 세율을 적용하는 부유세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이 통과돼 2022년부터 발효되면 2023년부터 세금이 본격적으로 부과된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약 20억 달러의 세금을 내게 된다.
KIF는 "찬성론자들은 부유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사업기반 안정화나 사회관계망 중시 등의 이유로 자산가들의 국외 이탈이나 조세회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낙관한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물경제 정상화, 지속가능 성장모델로의 전환에 초점을 맞춰 과세체계 최적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부유세가 코로나19 위기 극복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론 머스크 등 자산가들이 소득세율이 높은 캘리포니아주를 떠난 사례가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부유세가 위헌 판결을 받아 2년 만에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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