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몽타주] ‘조배죽’과 정파 사이…野 전당대회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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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21-06-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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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31일 오후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기자 초년병이던 2016년 겨울의 일이다. 당시 정치부 말진 기자였던 나는 강남구의 한 고깃집에서 열린 친이계 인사들의 회동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 그리고 대통령 당선일을 기념하는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 데이’였다.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군데군데서 벽치기(벽에 귀를 대고 엿듣기)를 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인사가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전해주기 위해 문을 열고 나왔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배죽! 조배직!” 회동에 참석했던 한 인사가 건배사를 외쳤다. 갓 사회에 들어온 터라 건배사 문화가 생경했다. ‘무슨 말이지’ 하고 고민하던 찰나 설명이 뒤따랐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인다. 조직을 배신하면 직인다” 참석자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2.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준석 돌풍이 대단하다. 중진들은 해묵은 계파 논쟁을 꺼내들었다. 이준석이 ‘유승민계’라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하지 못할 거라는 주장이다. 전당대회의 비전 경쟁이 금세 계파 대리전 양상으로 얼룩졌다. “이준석 후보가 유승민 전 의원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이 후보의 아버지가 유 전 의원과 친하다” ‘경험’과 ‘경륜’이 빼어난 이들이다. ‘계파’ 얘길 꺼냈을 때 전대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았을 거다. 이준석은 이렇게 맞받았다. “제가 바른정당 출신이기 때문에 바른정당계라고는 할 수 있겠다” 탈당 전력을 꺼내드는 건 당심(黨心)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전대에서 마이너스다. 이준석이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3.

지금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김세연 전 의원과 식사 자리에서 나왔던 얘기다. 김 전 의원에게 물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뭐가 나쁘냐. 계파라는 프레임 속에서 정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 김 전 의원이 정정했다. “계파(系派)와 정파(政派)는 다르게 봐야 한다. 학문적으로 정립된 용어인지는 모르겠다. 특정 인물이 중심이 돼 지연·학연 등 친소 관계로 뭉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게 계파다. 김 기자가 말씀하신 건 정파라고 봐야 한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소모임이라고 해야 할까. 그 안에서 얼마든지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4.

컷오프된 김웅과 이준석은 ‘할당제’를 놓고 이견을 보였다. 김웅은 내년 지방선거 청년 공천 할당제를 공약했다. 이준석은 모든 할당제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김웅은 “우리 당에 청년이 많으면 당연히 청년당이 되는 거고, 나머지 30~40년을 버티게 될 것이다”고 했다. 이준석은 “평일 낮 시간대에 여의도에 올 수 있는 이들을 위한 할당제는 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경험과 경륜을 내세운 이들이 보기에 두 사람은 모두 ‘유승민계’다.

5.

대한민국 정치는 아직, 조배죽과 정파 사이 어디 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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