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의 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 [사진=신동근 기자, sdk6425@ajunews.com]
"'한다', '안 한다'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집주인들이 실거주를 위해서 들어오고 세입자는 쫓겨나고 있어요."(목동 공인중개업소 대표 A씨)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를 규정한 법안이 늦어지고 있다. 법안이 실질적으로 세입자를 보호할 수 없다거나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민주당이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기 어려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년 실거주 의무 등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해 9월 11일 발의된 이후 소관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재건축 조합원이 2년 이상 실거주하지 않았을 경우 분양 신청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률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에서 한 번 논의됐다. 당시 국토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년 거주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경우 재산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등 의견을 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택 취득 후 재건축이 원활하게 추진돼 2년 이내 분양공고가 나면 분양신청 자격이 사라지지만 분양공고가 미뤄진다면 분양자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분양신청 자격 여부 예측이 불가능해 권리행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관계자는 모두 "현재 진전된 논의 내용이 없는 상태"라며 "언제 다시 논의될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업계는 세입자의 거주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권일 부동산 인포 팀장은 "앞서 정부는 세입자의 권익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신경 써왔다"며 "세입자들이 입는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투기라고 판단한 재건축 단지 투자를 잡아야 하느냐는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대선이 남은 상태에서 결국 표심을 의식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진형 경인여자대학교 교수(대한부동산학회 회장)는 "정부가 공급을 확대하는 분위기에서 해당 규제는 재건축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다"며 "또한 세입자가 떠나게 되는 등 시장 혼란을 불러올 수 있어 제도화가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선 법안이 세입자 거주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건축 단지들은 노후화 등으로 전셋값이 저렴한 경우가 많아 세입자들이 해당 단지에서 나왔을 때 인근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동 공인중개업자 A씨는 "멀쩡히 살던 세입자들이 쫓겨나고 집주인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아파트에 들어오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지금 웃고 있는 사람들은 인테리어 업자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들어오면서 수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인테리어 업자만 바쁘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법안 실행여부를 빨리 밝혀줘야 세입자도 집주인도 대비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대형 재건축 단지 근처 강남의 한 공인중개업자도 "아무래도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다른 지역 신축건물에 살다가 실거주 의무를 채우러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이 경우 세입자와 집주인 모두 불만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살던 집에 자녀들은 두고 집주인 부부만 이사하거나, 등기 후 빈집처럼 두다가 주말에 한 번씩 들르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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