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의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이 작심한 듯 거센 공세를 펼쳤다.
중국의 대미 전략이 강경 노선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연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회동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미·중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식어 가는 분위기다.
◆中 "양국 관계 교착은 미국 탓"
26일 중국 외교부와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셰펑(謝鋒)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전날 1박 2일 일정으로 방중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톈진에서 회담을 벌였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 이후 4개월 만에 재개된 대화다.
당시 미국 측에서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에서는 양제츠(楊潔篪)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나섰다.
이번에는 차관급 회담이라 미·중 정상 간 만남 등 현안에 대한 실무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회담 대표로 나선 셰 부부장의 입은 매서웠다.
그는 "양국 관계가 경색된 근본 원인은 미국 일각에서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2차 대전 때의 일본이나 냉전 시기의 소련처럼 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을 악마화하는 식으로 미국 내 정치·경제·사회적 불만과 구조적 모순을 중국에 전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셰 부부장은 "미국과 일부 서방 국가의 패거리 규율을 국제 규범으로 포장해 타국을 압박하고 있다"며 "대국이라고 소국을 깔보는 정글의 법칙을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홍콩 등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을 압박해온 점을 의식한 듯 미국의 인권 문제도 거론했다.
셰 부부장은 원주민 학살과 코로나19 방역 실패, 각종 전쟁 사례 등을 언급하며 "미국은 무슨 근거로 글로벌 민주 인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가. 중국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싸울 땐 싸운다" 대미 전략 선회
어렵게 성사된 고위급 대화 자리에서 중국이 맹공을 퍼부은 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물 건너 갔다는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상호 비방에 열을 올렸던 알래스카 회담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압박 전략의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는 중이다.
셔먼 부장관은 방중 전 일본과 한국을 차례로 방문해 동맹의 가치를 강조했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셔먼 부장관의 방중 직후인 27~28일 인도를 방문하는데 중국 포위 전략을 가다듬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오는 9월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간 안보 협의체) 정상회담 개최를 목표로 관련국과 사전 조율 작업을 진행 중이다.
셰 부부장은 "경쟁·협력·대항이라는 미국의 삼분법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눈속임"이라며 "대결과 억제가 본질이며 나머지는 미봉책이자 함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에 원하는 게 있을 때는 협력을 말하지만 자기가 유리한 영역에서는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 중단, 봉쇄, 제재에 나서고 있다"며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이득을 보겠다는 건 무슨 도리인가"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미 전략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우신보(吳心伯) 푸단대 미국연구센터 주임은 관영 환구시보에 "미국의 수법을 용납하지 않고 즉각 반격에 나서는 방식이 향후 중국 외교의 새로운 스타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셰 부부장도 회담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기원 연구와 대만, 신장, 홍콩,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 관료 및 공산당원에 대한 제재 철회 요구와 미국 내에서 중국이 관심을 갖는 주요 사안이 담긴 두 건의 리스트를 미국 측에 건넸다고 전했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고해진 것 같다"며 "연내 미·중 정상 간 회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양국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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