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가격이 물가 인상을 불러오는 이른바 ‘밀크 인플레이션(Milk Inflation)’ 조짐이 일고 있다. 1일부터 우유 원재료인 원유(原乳) 가격이 21원 인상됐다. 원유 가격 인상은 우윳값 인상과 맞닿아 있다. 우유를 필두로 빵·과자·아이스크림·분유 등의 제품 가격이 들썩일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원유 가격은 2013년부터 낙농업계 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도입한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원유가격연동제는 시장 수급 상황이나 대외변수와는 무관하게 우유 생산비만 고려해 원유 가격을 조정한다. 국내 25개 우유 회사는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할당된 원유를 정해진 가격에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통계청의 우유생산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생산비가 전년 대비 4% 이상 변화하면 당해 가격에 즉각 반영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1년에 한해서만 가격 조정을 유예한다.
원유가격연동제 시행 이후 원유 가격은 2013년, 2018년, 2021년 세 차례 인상됐다. 낙농업계는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가격을 동결했다. 낙농가는 올해 21원 올리기로 한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우유업계는 원유가격연동제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원유 가격은 오르지만 흰 우유 소비량은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등교 일수가 적어진 탓에 급식 우유 시장은 반토막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유업체들은 더 비싼 가격으로 할당된 원유를 매년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다.
낙농진흥회의 우유 유통소비통계에 따르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018년 27.0kg, 2019년 26.7kg, 2020년 26.3㎏으로 감소 추세다. 특히 작년 소비량은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가공유 소비량도 5.5㎏으로 10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유가격연동제의 손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유업계에서 나오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는 업체는 없다. 정부가 도입한 제도에 어느 업체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우유업계에서는 우유 가격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8년보다 원유 인상 폭이 큰 데다 물류비와 인건비도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유업계 관계자는 “우유업체들이 서로 가격 인상 폭과 시기에 대해 눈치를 보고 있다”며 “우유 가격 인상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우유 가격 인상 막기 나선 정부
원윳값이 오르면서 빵, 커피, 과자, 아이스크림 등의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8년 당시 원유 가격이 4원 오르자 서울우유가 흰 우유 1L 제품 가격을 3.6% 올렸다. 또 빙그레의 대표 제품인 ‘바나나맛우유’의 소비자가도 100원 인상되는 등 식품업계 전반에서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빙과업계도 가격 인상을 고심 중이다.
빙과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빙과업체들이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빙과 제품은 우유를 가공해서 만드는 만큼 우유업계의 가격 인상 이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우유 가격 인상 막기에 나섰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등 유관부처는 낙농업계 관계자들을 비공개로 만나 원유 가격 동결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농축수산물 물가지수는 지난해 대비 12.6% 올라 10년 만에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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