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깜짝인사란 평가다. 현직 금통위원이 금융위원장에 임명된 첫 사례가 됐다. 가계부채에 대한 확고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적기에 등판했다는 말도 나온다. 넘쳐나는 유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준금리를 두고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인상 소수의견을 낸 점에서 알 수 있다. 금통위 통방문을 보면 고 후보자는 “코로나 전개상황과 성장률, 물가 흐름, 금융불균형 누적 위험 등을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은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역임한 바 있으며, 2019년 기재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대사를 맡으며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간 차기 금감원장 하마평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다.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될 사람이 됐다”는 말부터 나왔다.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수장은 정은보 원장이다. 그는 취임식에서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정신으로 경직되지 않은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유연한 금감원을 만들겠다는 그의 철학이 담겼다. 규제 일변도의 찍어누르는 금감원이 아닌, 시장과 소통하는 금감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노조 측에서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관(官) 출신 인물이 오면서 그간 대립각에서 밀렸던 금감원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간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는 견원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머물던 10여년 전, 같은 식당에서조차 마주치기를 꺼릴 정도였다. 나이 40대 초반 금융위 과장과 나이 50을 넘긴 금감원 국장이 서로 멱살잡이를 했을 정도로 손발이 맞지 않았다. 서로간의 불신만 컸다. “너희들이 뭘 아느냐”는 금감원의 생각과 “민간과 가까운 너희들이 왜 공무원의 영역을 침범하느냐”는 금융위의 생각이 서로 달랐다. 줄여 말하면 서로간의 밥그릇 싸움이 가장 컸다.
이후로는 감독기관의 역할을 금융위가 일정부분 흡수하면서 중복행정이라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일부러 몸집을 불리기 위해 금감원의 알짜 기능들을 빼앗아 갔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놓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결합은 물 건너갔다. 다음 정권에서도 과연 둘의 결합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된다면 금융위가 사라지고 옛 금감위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사모펀드 사태에서 드러났듯 금융위는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금감원은 이를 반대하면서 엇박자가 났고 이번 사태로까지 문제가 번졌다. 공무원 조직 중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조직을 꼽자면 단연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다. 동지로서, 또 서로 라이벌로서 경쟁해온 두 사람이 과연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다. 이제는 경쟁보다는 철학을 공유해야 할 때다. 두 행시 동기들의 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