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칼럼] 가벼운 금융당국, 경직된 대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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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입력 2021-09-0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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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세돈 교수 제공]

별안간 금융기관들이 주택대출을 조이면서 은행창구 현장에 난리가 일어났다. 입주일이 코앞에 닥친 전세입주자나 주택구입자가 잔금대출이 막히면서 은행 플로어에서 혼란과 함께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서민 경제가 꼬일 만큼 꼬였고 사람들이 예민할 대로 예민한 상황에 예고도 없이 대출이 중단되면서 많은 국민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나가며 뱉은 금융위원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지난 8월 6일 금융위원장 후보는 기자들에게 가계부채 관리 의지를 강하게 밝혔는데, 자신의 발언이 현장에서 어떤 파란을 몰고 올지에 대한 깊은 배려 없이 뱉은 한 마디가 온 가계 담보대출 시장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예비 금융수장의 그 말을 들은 거의 모든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들은 서둘러 가계대출을 중단하거나 그럴 예정임을 밝혔다. 한 마디 예고도 없었다. 정부는 물론 청와대와 한국은행도 가계부채의 증가율을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4~6% 수준으로 증가하던 가계부채 증가율이 작년과 올해 상반기에는 8~9%로 올랐다면서, 어느 정도 선제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상당한 금융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거시건전성 차원에서 가계부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정부의 이런 판단에는 여러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코로나 비상상황이다. 셀 수 없는 중소자영업자와 개인들이 어려워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계신용 증가율이 5%를 넘어선 것도 코로나 위기로 발단한 2020년 2분기부터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가계대출 증가목표관리를 탄력적이고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

대출 증가율 관리목표를 5~6%로 선정해야 할 근거가 없다. 6% 내로 운용되면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6%가 넘으면 금융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어느 교과서에도 없다. 자의적이고 경직적이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18년간 통계를 놓고 보면 가계신용 증가율이 5% 아래에 있었던 해는 카드 대란으로 신용이 크게 위축되었던 2003년과 2004년, 그리고 2019년 딱 세번밖에 없었다.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과 2009년에도 가계대출은 8% 증가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11.8%까지 올라갔고 부동산을 장려하던 2015년과 2016년에는 10%를 넘었다. 이 두 경우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가 부추겨서 그런 것이지 저절로 급증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가계대출 증가율을 높여 놓고 또 그것을 금융안정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뒤집는 것이 한국 금융정책의 현주소다. 가계대출 급증을 이유로 내세워 금융 불안이 온다는 예기를 들은 지 10년도 넘었고 그런 주장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위기가 온 적은 없었다. 1980년대 한국은행이 매월 은행별로 대출 증가율을 정해주고 윽박질렀는데, 대출관리를 하지 말고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다. 수치에 얽매이면 구시대적 작태가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대출 급증이 아니라 그 원인이다. 이번 경우는 주택과 주식 폭등에 따른 '영끌, 빚투' 대출이 주원인이다. 통계에 따르면 금년 가계대출의 절반 이상이 주택가격이나 전세 가격의 상승에 따른 자연증가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의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698조8000억원으로, 작년 말 670조2000억원에 비해 4.28%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4.14% 증가했고, 전세자금 대출은 14.0%나 늘었다. 올해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19조6000억원은 가계대출 전체 증가액 28조6000억원의 68.5%를 차지했고,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전세자금대출 증가분이 14조7000억원으로 절반이 넘는 51.5%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금년 목표를 넘을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아파트 가격은 14%, 전셋값도 8%나 올랐으니 가계대출 증가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주택가격 급등 원인은 2019년 말부터 나온 부동산 정책실패 때문이었다. 그것만 바로 돌려놓으면 상당 부분 대출 문제는 해결된다. 영끌, 빚투의 원인을 제거하면 가계대출 증가는 상당 부분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일단 정책 당국의 입은 징그러울 정도로 무거워야 한다. 가볍게 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거의 없다. 연준 의장 파월은 못 된다 하더라도 말 몇 마디로 정책효과를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책 당국자의 말이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대부분 일시적 충격효과일 뿐 펀더멘털을 뒤집을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올바른 대처방법은 이렇다. 일단 5%와 같은 대출총량 가이드라인 제도는 폐기해야 한다. 가계대출이 10%씩 증가해도 위기가 온 적은 없다. 만약 경제가 활발히 성장하면 10% 이상으로 증가해도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다. 또 대출이 2%, 3%로 낮게 증가한다고 금융위기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가계대출 중에서 코로나 긴급대출과 그 외 대출을 분리해서 그 외 대출만 집중 관리대상으로 삼아야 했다. 그리고 당국은 그 부분을 강조해서 국민에게 사전에 알려야 했다. 대출관리는 물량규제보다는 가격(금리)수단을 먼저 동원해야 한다. 그리고 가계대출의 금리를 올린다는 것을 미리 예고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앞장서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이 점에서 보면 한국은행은 이미 늦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안한 대출 급증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정책 실패에 따른 불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번 경우에는 잘못된 주택정책의 시급한 원상 환원이다.

그렇지만 정부당국이 6% 가계대출 총량정책을 명시적으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 당국의 위신이 걸린 문제라서 그렇다. 대신 실수요자 혹은 취약계층에게는 대출 문턱을 열어 둘 것이다. 이들에 대한 대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대출 총량 규제가 복잡하게 꼬이고 유야무야될 것이다. 대출 총량규제가 있기는 하지만 해당 범위를 마음대로 넣다 뺐다 하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규제가 되고 말 것이다. 시장에서 대출 금리는 계속 오를 것이지만 이자율이 조금 오른다고 주택가격이나 전세가격이 안정될 것 같지는 않다. 워낙 공급이 억제되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렇다. 정리해보자. 주택가격 급등에 따른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총량을 규제하기로 했지만 억울한 실수요자 대출은 터주면서 대출 급증을 막지도 못하고 주택가격 급등도 막지 못하면서 대출 수요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코로나 경기 불안에 시중금리 상승이 겹치면서 상환불능에 처한 차입자들이 급증하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불안도 한층 커질 것이다. 신규대출자의 대출 급증이 문제가 아니라 기존 대출자의 상환능력 부족이 금융시스템 불안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세돈 교수 제공] ]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 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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