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 자국을 넘어 세계인의 심장을 들썩이게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들이 있지만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김연경 선수는 배구라는 종목에서 ‘갓연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별명을 얻기까지 김연경이 만들어낸 역사는 묵직하다. 그는 세계 1위라는 타이틀과 함께 좋은 마인드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고 이를 극복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세계 1위라는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남보다 더욱 피나는 노력을 한다. 선수로서의 실력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이끌어 하나로 만드는 리더십과 동료들의 문제까지 자신이 안고 가는 책임감을 함께 갖춘 모습을 보며 전 세계가 열광을 하는 게 아닐까.
김연경 선수와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2년 가까이 인터뷰 요청을 한 끝에 드디어 인터뷰가 성사됐다. 줌을 통해 40분간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가 된 김연경 선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Q.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빈 코트를 바라보는 장면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A. 어떻게 알고 찍으셨는지 신기했어요(웃음). 이번 올림픽을 하면서 ‘진짜 마지막이겠구나’라는 생각을 매 경기 했었어요. 그래서 경기 들어가기 전부터 끝나고 나서도 감회가 새로웠고 지금도 닭살이 돋을 정도예요.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자꾸 해서인지 코트를 보면서 ‘진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올림픽 경기가 되겠구나’라는 느낌에서 바라봤는데 그게 찍혔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신기하게 생각했었던 부분이었어요.
Q, ‘해보자’라는 말이 뭉클하면서도 인상 깊었는데요. 김연경에게 해본다는 것의 의미는 뭔가요?
A. 경기를 하다 보면 후회하는 경기들이 많아요. 특히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인데, 이번 올림픽은 5년 만에 왔기 때문에 더 중요했어요. 끝나고 났을 때 내가 ‘후회 없이 했구나’라는 것을 느낄 만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고, 제가 경험이 있어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렇게 외쳤는데 이슈가 돼서 부끄럽긴 한데 후회 없이 한 것 같아요.
Q. 은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국가대표 은퇴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까 항상 고민했었어요. 어느 시점이 돼야 괜찮은 건가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를 마친 뒤 은퇴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상황에 조금씩 부상도 많이 생겼어요. 배구 시즌이 겨울, 봄이고 대표팀이 여름이라 1년 내내 톱니바퀴처럼 돌거든요. 그래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면서 은퇴시기를 정한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내년 아시안게임을 같이 못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요.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라서 결정하게 됐어요.
Q. 새로운 행선지로 중국을 선택했는데, 기대되는 점은 뭔가요?
A. 행선지를 정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국내도 생각했었고, 유럽 쪽에 다시 갈까도 생각하던 중에 중국에서 오퍼가 들어왔어요. 두 달 정도 짧은 시즌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대표팀이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짧은 시즌을 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어요(하하).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으로 정했죠. 겨울 이적 시장이 유럽 쪽에 열리게 된다면 갈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Q, 그렇다면 뛰어보고 싶은 리그가 있나요?
A. 지금 결정한 부분은 하나도 없어요. 혼자 생각을 하는데, 미국 쪽에 리그가 생겼거든요. 거기서도 얘기가 있긴 해요. 조던 라슨(미국·도쿄올림픽 MVP)에게 연락이 왔는데, 미국에서 뛸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몇 군데 이야기가 있긴 한데 확실하게 결정을 지은 것이 아니라서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만약에 간다고 하면 어느 유럽이라도 괜찮아요. 이탈리아 리그를 경험하지 못해서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중국 시즌 끝나고 잘 정해 보려고요.
Q. 은퇴 후 후배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떤가요? 자신의 후계자로 꼽는 선수는 누군가요?
A. 많은 선수들이 있어요(하하). 한 선수를 고르기가 힘들어요. 말하지 않아도 아시지 않나요? 한국 배구를 이끌어가야 할 선수들이 있거든요. 각자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고, 대표팀에 왔다 갔다 했던 선수들이 한국 배구를 이끌어야 한다고 봐요. 각자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모든 선수들이 이번 시즌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Q. 김연경 이후로 해외에 진출할 것 같은 선수는 누군가요?
A. 안 할 것 같아요(크크). 국내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더라고요(웃음).
Q. 라바리니 감독이 은퇴와 관련해서 이야기해준 부분이 있나요?
A. 감독님이 '선수들은 항상 마음이 바뀐다.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물어보신 것 같아요(하하). '은퇴 확실하냐?'고 물어보신 뒤 확실하다고 하면 일주일 뒤에 또 물어보셨어요. 그러면서 은퇴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보이셨어요. 크게 감동적인 얘기는 안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항상 좋은 말씀은 많이 해주셨어요. 저에게 '좋은 선수면서 좋은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동을 받았어요. 대표팀을 위해 희생한 부분에 대해서도 대견하다고 해주셨고요.
Q. 팬들과 김연경 선수가 그토록 원하던 식빵 광고 모델이 됐는데요. 기분이 어떤가요?
A. 드디어 했어요. 촬영이 힘들긴 했는데 곧 나오는데 웬만하면 제 얼굴 붙어 있는 식빵을 사주셨으면 좋겠어요(크크). 안에 스티커도 있을 예정이니까, 잘 간직해주세요(하하하).
Q.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인성을 가져야 할까요?
A. 김연경 미담을 저도 많이 들었어요(하하). 저도 부담스러워요. 내가 내 인성을 판단하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를 겪어 본 사람들이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봐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데 ‘지금까지는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베풀려고 노력하고 솔선수범하려고 해요.
Q. 올림픽 치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뭔가요?
A. (아쉬워하며) 댓글창이 닫혔잖아요. 그래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댓글을 보면 오글거리는 멘트가 많이 보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교회는 성경, 불교는 불경, 배구에는 김연경'이라는 댓글이에요(웃음). 그 댓글이 역주행했는데 앞으로도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Q. 김수지, 양효진 등 베테랑 선수들이 같이 은퇴를 했잖아요. 앞으로 한국 여자배구를 위해 어떤 시스템이 도입됐으면 하세요?
A. 체계적인 시스템이 중요할 것 같아요. 외국인 감독님이 들어오시면서 변화된 부분이 많아요. 체계적인 부분이 많이 바뀌었는데 앞으로 청소년 대표팀, 유스 등의 선수 육성이 중요할 것 같아요. 국가대표 지도자분들이 우리가 했던 부분들을 소화시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어요. 그 선수들이 성인대표팀에 들어와야 하거든요. 4년이라는 시간을 과정으로 보고 큰 대회를 목표로 계획적인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은퇴 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A. 잘 모르겠어요. 지도자 욕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행정적인 부분도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방송인 김연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방송을 해보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 여러 방향으로 생각 중이에요.
Q. 올림픽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만나는 팬들마다 '고생하셨어요'라는 말을 많이 해주시는데 한국에 와서 지내다 보니 더욱 실감을 해요. 가장 짜릿한 순간은 아무래도 한·일전인데 12-14에서 역전승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가장 짜릿했어요(크크).
Q.앞으로의 목표는 뭔가요?
A. 지금의 기량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요. '김연경이 아직까지도 잘하는구나'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몸 관리 열심히 할 거예요.
Q. 정지윤(현대건설, 21) 선수의 레프트 잠재력은 어떻게 보세요?
A. 강성형(여자배구국가대표팀, 52) 감독님이 얘기하셨더라고요. 우리끼리 얘기한 건데...(하하). 정지윤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했었어요. 팀 사정상 센터를 했었죠. 이번에 라바리니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시간이 있으면 정지윤을 레프트로 써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레프트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제가 봐도 분명 잠재력이 있어요. 파워풀한 공격을 가지고 있고요. 그 공격을 살린다면 좋을 것 같아요. 레프트는 리시브도 잘해야 해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이제 시작이에요. 1도 시작 안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힘든 날이 있을 텐데 힘내서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A. 대표팀을 위해 뒤에서 열심히 도와줄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저 역시 열심히 할 테니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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