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왕징(望京)의 랜드마크 왕징소호. 소호차이나에서 건설한 이 빌딩은 우리나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소호차이나는 이외에도 베이징과 상하이 곳곳에 서구식의 세련된 디자인의 오피스빌딩을 세우며 명성을 떨쳤다.
소호차이나를 진두지휘하는 건 판스이(潘石屹)-장신(張欣) 부부다. 만난 지 2주 만에 결혼식을 올린 연애사로 잘 알려진 그들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자 커플이다. 하지만 유명 인사인 만큼 구설수에도 자주 오른다.
규제 불확실성에···블랙스톤, 소호차이나 인수 '불발'
최근엔 이들의 ‘탈(脫) 중국’ 행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월 소호차이나가 세계적인 투자그룹 블랙스톤에 팔릴 것이란 소식이 나오자 그가 중국 사업에서 발을 빼고 해외로 '도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하지만 결국 석 달 만에 소호차이나 매각은 불발됐다. 블랙스톤이 소호차이나 인수 중단을 선언하자 지난 13일 홍콩거래소에서 소호차이나 주가는 하루 새 40% 가까이 폭락하며 2홍콩달러 대로 주저앉았다. 앞서 6월 블랙스톤 인수설로 주가가 2주 만에 갑절로 뛰며 4.6홍콩달러까지 치솟았는데, 인수 실패로 주가가 다시 원상 복귀한 셈이다.
앞서 소호차이나는 지난달 초 블랙스톤과의 인수합병안을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에 제출했다고 발표했는데, 아마도 이번 인수거래안이 당국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원시(柏文喜) 환예투자(環業投資,IP글로벌) 수석 경제학자는 21세기경제보를 통해 "인수합병과 관련한 반독점 심사가 지지부진하면서 당초 약정했던 인수 완료 기한을 초과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엔 당국의 불명확한 태도가 블랙스톤의 소호차이나 사업 인수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렸고, 인수를 포기하게 만든 배경이라는 얘기다.
이 와중에 US오픈 관전…脫중국 행보 '도마 위'
사실 판스이·장신 부부의 소호차이나 매각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들 부부가 최근 중국 공산당 규제 강화 속 본토 부동산을 내다팔아 해외로 자산을 빼돌리려는 의혹이 일었던 것이다. 판스이 부부의 중국 본토 부동산 매각은 2014년부터 서서히 진행됐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상하이 소호하이룬광장, 징안광장, 링쿵소호 빌딩, 소호스지광장, 훙커우소호 등 팔아넘겨 현금화한 액수만 200억 위안이 넘는다.
이렇게 보유한 빌딩을 하나씩 매각하다가 아예 소호차이나 기업 전체를 매각하려 했던 것이다. 소호차이나 매각도 사실 이번이 벌써 세 차례 시도였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3월에도 40억 달러에 소호차이나를 인수하려 했으나 다섯 달 만에 무산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최대 투자회사 힐하우스캐피털이 소호차이나 사유화를 위한 인수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
사실 판 회장 부부는 평소 중국 국내보다 해외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블랙스톤과의 거래가 불발됐다는 소식이 한창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지난 12일에도 이들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판 회장 부부의 모습은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을 중계방송하는 중국 국영 CCTV 카메라에도 잡혀 전국에 방영됐다.
'요주인물'로 찍혔나···판스이가 소호차이나를 팔려는 이유
탈중국화 소문이 무성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 규제 강화 속 판스이 회장이 당국의 감시대상에 올랐다는 것이다.2014년 판 회장이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에 거액을 기부하자 중국 본토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그는 가난한 중국 학생들의 미국 유학을 돕기 위함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은 자기 아들의 하버드대 진학을 비롯해 중국 고위층 자녀의 미국 명문대 입학 진학을 돕기 위한 정경유착이 배경이라는 구설수를 피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판 회장의 아들은 지난해 중국·인도 군대가 충돌을 빚었을 당시 SNS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을 비방한 혐의로 중국 당국에 의해 지명수배령까지 내려졌다.
이밖에 판 회장의 절친으로 잘 알려진 중국 또 다른 부동산재벌 런즈창은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방하는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당국의 집중 조사를 받았고, 결국 비리 혐의로 18년형을 받고 감옥에 있다. 판 회장 역시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호차이나 중국 내 사업 환경도 악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소호차이나 빌딩은 겉만 화려하지 사실은 '황금알을 못 낳는 닭'이라고 꼬집어 이야기할 정도다.
소호차이나는 그간 여러 빌딩을 매각하고 현재 베이징·상하이에 총 8개 빌딩 자산만 가지고 있다. 판스이 회장이 한때 '팔대금강(八大金剛)'이라 불렀을 정도로 소호차이나의 핵심 자산이다. 왕징소호를 비롯해 광화루소호2, 차오양먼소호, 리쩌소호, 소호푸싱광장, 와이탄소호, 소호톈산광장, 구베이소호가 그것이다. 이들 빌딩 건축면적을 모두 합치면 약 80만㎡, 축구장 약 110여개 크기가 넘는 면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오피스 빌딩 사업은 직격탄을 입었다. 소호차이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9% 증가한 21억9200만 위안에 달했지만, 순익은 7% 하락한 16억 위안에 그쳤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47%까지 고꾸라졌다. 100억원 투자해서 고작 1억4700만원 벌고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이익을 못 내고 있다는 얘기다. 판 회장도 "임대수익률은 3%도 안 되는데, 은행 대출 이자만 4%가 넘는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제2 블랙스톤 물색 나서나···소호차이나 상장폐지설도
블랙스톤 인수 불발 후 이제 시장의 관심은 소호차이나의 향후 거취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판스이 회장이 계속해서 제2, 제3의 블랙스톤 같은 투자자를 물색해 소호차이나를 내다파는 것이다. 다행히 올 들어 코로나19 충격에서 경기가 차츰 회복하면서 오피스 빌딩 수요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상반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소호차이나 빌딩 오피스 평균 입주율은 90%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6월 말에는 고작 78%에 그쳤다.
소호차이나 재무 상태도 무난한 편이다. 6월 말 기준 자산부채율은 43%로, 건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천천히 현 경영상태를 유지하면서 여유 있게 투자자를 물색해도 된다는 의미다.
다만 최근 중국 내 규제가 강화된 만큼 투자자를 물색해 회사를 내다팔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원시 수석 경제학자는 "현재로선 인수자를 찾기가 어려워 아마도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빌딩을 따로따로 매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소호차이나가 홍콩증시에서 상장폐지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 경제학자는 "소호차이나는 신규 부동산개발 사업을 벌이지 않고 사실상 임대수익만 벌어들이는 상황이라 자금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며 "굳이 상장비용을 들여 투자자들의 실적 압박을 받으면서까지 상장회사 지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