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A고교가 일과시간에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행위는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지난 2016년부터 관련 진정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학생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는 다른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학교 "면학 분위기 진작 목적···교육공동체 의견 수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다만 학생들의 무분별한 휴대전화 사용을 줄이고 면학 분위기를 진작시키려는 목적에서 휴대전화 사용규정을 두고 있다. 휴대전화를 소지할 순 있지만 사용은 못 하는 것이다. 헌법 제37조도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공공질서를 해칠 시에는 개인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A고교는 교사 수업권과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더 중요하게 봤다.
또 학생들은 멀티미디어실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고, 교사 각 층에는 구내 수신자 부담 전화기가 설치돼 있다. 위급 시 담임교사를 통해 가정-학생이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도록 체계가 잡혀 있다.
다만 휴대전화 관련 민원은 소수 의견이지만,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하고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에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학생 생활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A고교는 "만약 현재 생활규정이 구시대적이고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를 핍박하고,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하게 개혁돼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미완의 시대에서 완성의 시대로 가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소수 의견과 더불어 다수 의견, 교육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잘 수렴해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3월 1일부터 5월 27일까지 A고교에서 학생들이 휴대전화 사용으로 적발돼 벌점을 받은 건수는 총 304건이었다. 그중 수업시간 중 사용은 74건, 그 외 사용은 230건으로 집계됐다.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수업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월 공개한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 습관 진단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중 하나 이상에서 과의존 위험군으로 진단된 청소년은 22만8891명으로 집계됐다.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연령은 중학교 1학년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19.8%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교 1학년이 17.4%, 고등학교 졸업 이후가 12.4%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와 관련해 진보 교육감들은 교내 학생 휴대전화 사용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018년 교육부에 관련 규정 개정을 제안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설문조사 결과 초·중등 교사 97%가 이에 반대했지만, 교육부는 지난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학교규칙에 담을 수 있는 내용 중 '두발 복장 등 용모'와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을 삭제했다.
◆인권위 "휴대전화, 단순 통신기기 아냐···학생 기본권 보장해야"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사진=인권위 제공]
헌법 제10조는 행복추구권에 바탕을 둔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를, 제18조는 통신 불가침성을 규정해 통신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유엔(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16조는 어떠한 아동도 사생활, 가족, 가정, 통신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과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는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과정에서 존중·보호되며, 학교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서 명시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권위는 "A고교가 교내에서 휴대전화를 제한하는 것은 학생이 수업 중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화·메시지 등을 수신함으로써 본인과 다른 학생의 학습, 교사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달성 수단으로 적합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휴대전화 사용 제한 필요성이 인정된다 해도, 현대사회에서 휴대전화는 통신기기 이상의 기능을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들 간 상호작용을 증대시켜 사회적 관계를 생성·유지·발전시키는 도구이자 각종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라는 게 인권위의 관점이다.
인권위는 "청소년이 성장과정에 있는 존재인 점을 고려하면, 학교는 수업 중에만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등 학생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현행 규정을 유지하는 것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른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부정적 효과를 이유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기보다 공동체 내에서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본인 욕구와 행동을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앞서 2017년 9월에도 학생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해 소지·사용을 제한하는 행위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해 헌법 제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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