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기세로 기름값이 올랐다. 11월 12일 금요일 자정부터 유류세가 20% 인하된다는 소식에, 그 며칠 전부터 자동차에 기름을 넣지 않고 최대한 버텼다.
11일 퇴근길, 몇몇 단골 주유소 휘발유 1ℓ당 가격은 1800원대, 알라딘 램프 노란색 경고등이 켜졌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출근길에 1600원대에 넣을 거라 기대하며 지나갔다.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전날 본 주유소 가격은 요지부동이었다. 다행히 연료 탱크 미터기가 완전 바닥까지 내려가진 않아 출근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대다수 일반 주유소가 가격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재고 관리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알뜰주유소는 하루 전인 11일 한국석유공사가 최대한 물량을 공급해 인하 시점에 발맞출 수 있었다. 일부 정유사 직영 주유소는 공급 물량을 조절해 인하분을 가급적 빨리 판매가에 반영했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11~14일 알뜰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은 ℓ당 평균 128.88원 떨어진 반면 정유 4사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53~65원씩 하락하는 데 그쳤다.
여기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교훈을 대입할 필요가 있다. 조삼모사는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으로, 원숭이에게 아침과 저녁 먹이를 달리 주지만 총량은 같다는 걸 말한다. 당장의 차이에 신경 쓰지만 결과는 매한가지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남을 농락하는 잔꾀를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유류세 인하 전후 주유소들에게는 '조삼모사'를 적용해야 한다. 조삼모사를 잘 하면 양심적인 주유소고, 아니면 반대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알뜰주유소 공급분에 대해 유류세 인하를 하루 일찍 적용한 대신 인하 종료 시점 역시 하루 앞당기기로 했다. 즉 알뜰주유소의 유류세 인하 종료 시점은 정부가 정한 내년 4월 30일보다 하루 앞당긴 4월 29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고 관리’를 이유로 가격을 늦게 내렸거나 지금도 인하하지 않은 주유소는 어때야 하나. 당연히 유류세 인하 종료 시점을 재고 소진 시점까지 연장해야 할 거다. 재고 계산을 칼 같이 해 내릴 때와 똑같이 시차를 두고 나중에 기름값을 올려야 한다. 통상적으로 10~14일치를 확보해 놓는다고 가정하면 늦으면 내년 5월 중순까지 유류세 인하분 가격으로 판매하는 '조삼모사 주유소'가 존재해야 한다.
10월 27일부터 11월 11일까지 16일 동안 주유소들이 재고 관리를 미리 미리 신경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셈이다.
그러면서 정유사 공급가격과 소비자 판매가격의 인하분 반영 정도를 매일 점검하고, 오피넷을 통한 유류세 인하 효과를 공개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석유시장 내 담합, 매점매석 등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고 엄정 조치하겠다고 했다.
내년 4월 유류세 인하 시한을 전후해 조삼모사와 동떨어진, 일부 비양심 주유소들의 불공정 행위를 박 차관이 앞장서 막아주기 바란다. 대단한 빅데이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피넷에 나온 11월 12일 이후, 내년 4월 30일 이후 일정 기간 주유소별 가격을 비교하면 훤히 드러날 일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