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미싱타는 여자들'은 여자라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 대신 미싱을 탈 수밖에 없었던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편견 속에 감춰진 그 시절 소녀들의 청춘과 성장을 다시 그리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결성된 평화시장 '노동조합'과 '노동교실'에 얽힌 여성 노동자들의 추억을 담은 영화는 노동사의 단순 기술을 넘어 어린 나이부터 노동의 현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과거 여성들의 현실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함께 연대하며 성장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사연을 담았다.
당시 '노동교실'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며 더 나은 삶을 소망 했던 소녀들의 특별한 성장담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특히 그동안 남성과 지식인의 그늘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노동자들의 활약상을 조명하며,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로만 그려졌던 그간의 편견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여성들의 청춘기를 담아내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작품.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를 그려낸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미군 '위안부' 출신 박인순이 스스로 자신의 복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저승사자들에 맞서는 오드 판타지 영화. 주인공 '인순' 역을 박인순씨 본인이 직접 연기하는 등 독특한 촬영 방식으로 제작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어 눈길을 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기괴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와 이미지로 미군 기지촌 출신 박인순의 잔혹했던 삶을 조명한다. 그의 상상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이 그와 그의 동료 주위를 맴돌며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모습은 소리 소문도 없이 죽어가던 기지촌 여성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라는 영화 홍보 문구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가로지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가 기록되지 못한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기지촌 여성들을 대변하는 영화가 아닌 그들 안의 꿈, 기억, 욕망을 영화란 매체를 통해 재구성해 독립 영화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월 27일 개봉.
마지막으로 '보드랍게'는 기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들을 경유해보다 새로운 시선과 얼굴, 질문을 제시하며 잊어서는 안 될 역사와 마주해야 할 개인의 삶을 비추며 관객 저마다 공감과 위로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마이 플레이스'(2014), '파란나비효과'(2016)를 이은 박문칠 감독의 3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름다운 기러기상을 석권하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특히 주인공 김순악 씨를 '피해자'라는 단순한 프레임에 가두지 않으며, 그가 살아온 삶을 입체적이고 통시적으로 조명하며 20세기 과거를 살아간 여성 김순악과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엮고,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킨다. 2월 개봉.
위 세 작품은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과 온기로 담아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폭력에 노출되어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뒤늦게나마 조명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인상 깊은 작품이다. 2022년 새해를 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웰메이드 여성 다큐멘터리들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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