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BTS와 지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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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입력 2022-02-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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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사진=한국방송협회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퀴즈 하나. BTS의 멤버는 모두 7명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서울 출신은 모두 몇 명일까요? 정답은 0명. ‘없다’입니다.

맏형 격인 진(김석진)과 메인 래퍼인 RM(김남준)이 경기도 과천과 고양 출신으로 그나마 서울과 가까운 편입니다. 나머지 5명은 대구, 광주, 부산 출신입니다. 대한민국 ‘교육 1번지’ 강남 8학군은 고사하고, 5100만 전체 인구 가운데 1000만이 넘게 산다는 서울이 고향인 멤버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순도 100% ‘지역’ 출신의 BTS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이 말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독일의 문호 괴테의 말에서 인용된 표현입니다. 다양한 문화적 가치의 조화가 세계적인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 7명의 지역 청년들이 글로컬(글로벌+로컬)의 시대를 활짝 연 셈입니다.

이처럼 지역은 세계적인 문화 상품을 낳는 창조성의 기반이자 다양성의 보고입니다. 그래서 지역성은 공익적 가치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중한 지역성과 다양성을 지역 현장에서 지키고 가꿔나가는 존재가 바로 지역·중소 방송사들입니다.

하지만 지역·중소방송사들이 생존의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26개 지역방송사 가운데 2020년 현재 18개 사가 적자상태입니다. 2010년 4800억원대에 이르던 광고수입은 2400억원대로 반 토막이 났고, 매출도 10년 만에 4분의 1가량이 줄었습니다. 이는 지역·중소방송의 기반인 대한민국의 지역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가량인 106개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상태입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구조적인 결과입니다.

구조적인 지역소멸을 막으려면 지역 생태계 차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역 교육과 일자리, 자치와 지역방송이 만들어 내는 선순환의 복원만이 해법입니다. 그리고 이 선순환의 마중물은 지역방송이 맡아야 할 책무입니다. 인구 증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역 산업과 일자리 확보, 또 여기에 필요한 인재 양성은 지역 여론의 힘으로 지역정부와 대학 등 교육을 추동할 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지역여론의 형성이 지역방송의 기본 역할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도 “지역·중소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임 이행을 뒷받침 하는 재정적 지원방안에 대한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시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역·중소 지상파방송의 건전한 재원 확보와 지원방안에 따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는 약속도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그러나 말뿐입니다. 실효성 있는 개선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 동안 지역·중소방송에 지원된 돈은 모두 191억원. 매년 평균 23개 사가 지원 받는 회사당 평균 지원 금액은 연간 1억3000만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한국방송협회는 지난달 초 지역·중소 방송사들의 재원확보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방안의 하나로 ’협찬주명 프로그램 제목 광고’, 즉 이른바 ‘타이틀스폰서’를 다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청했습니다.

타이틀스폰서란 방송 프로그램명이나 행사명에 기업 등 협찬회사의 이름이나 브랜드를 붙이는 홍보방식입니다. 2018년부터 신한은행이 KBO리그에 연간 80억원 규모로 후원을 하며 ‘신한은행 쏠 KBO리그’라고 명명하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타이틀스폰서는 미국과 일본, 영국과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현재 널리 시행되고 있고, 우리도 1960년대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유신독재를 획책할 무렵,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듯, ‘정화’와 ‘퇴폐풍조 단속’이라는 가당치도 않은 이유로 이를 금지했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규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신독재의 악성규제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는 상황이 문제가 있다고 느꼈는지, 방통위는 지난해 하반기까지는 타이틀스폰서십을 허용하겠다는 세부 이행계획까지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감감 무소식입니다. 방통위가 자체 의결을 통해 ‘협찬고지 등에 관한 규칙’만 개정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규제개혁인데도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이틀스폰서의 허용은 지역·중소방송사를 지원하고 지역 소멸을 막으며 지역성과 다양성이란 공익적 가치를 신장하는 데 실효성이 큰 조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1년에 한 회사당 1억3000만원씩 지원해왔던 것과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비록 국내 1000대기업의 본사 가운데 75%가 수도권에 몰려 있지만, 지역에는 여전히 25%의 기업 본사와 공기업들이 다수 배치돼 있는 만큼 의미 있는 타이틀스폰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 들어 국내외 기업 세계의 대세로 떠오른 ESG 경영과도 맞춤형으로 커다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 확실시 됩니다. 기업들이 지역사회를 위한 상생과 배려를 목표로 다양한 활동과 투자를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만큼, 지역방송과 협업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역성과 다양성으로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대한민국의 지역이, 지역·중소방송들과 함께 힘차게 되살아나기를 꿈꿔봅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BTS 제이홉(정호석)이 부르는 ‘MA City’의 표현처럼, ‘미친 듯이 bounce’하기를 바라봅니다.

“나 전라남도 광주 baby, 내 발걸음이/ 산으로 간대도, 무등산 정상에 매일매일/ 내 삶은 뜨겁지, 남쪽의 열기/ 이열치열의 법칙, 포기란 없지/ 난 KIA 넣고, 시동 걸어/ 미친 듯이, bou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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