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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승헌 변호사 [사진=아주경제 DB]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이하 장례위원회)는 지난 20일 밤 별세한 고인의 장례를 5일 동안 민주사회장(葬)으로 진행했다. 24일에는 추모식을 열고, 장례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발인과 노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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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한 변호사 빈소 조문을 마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중요한 직책들을 맡으셨지만, 당신은 영원한 변호사였고,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었으며, 후배 변호사들의 사표였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한 변호사와 깊었던 인연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학 4학년 때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어 서대문 구치소에서 감방을 배정받았던 첫날, 한순간 낯선 세계로 굴러떨어진 캄캄절벽 같았던 순간, 옆 감방에서 교도관을 통해 새 내의 한 벌을 보내주신 분이 계셨는데 바로 한 변호사님이었다"라며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로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와 계셨을 땐데, 그렇게 저와 감방 동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과 오랫동안 면회를 못해 갈아입을 내의가 무척 아쉬울 때였는데, 모르는 대학생의 그런 사정을 짐작하고 마음을 써주신 것이 그때 너무나 고마웠고, 제게 큰 위안이 됐다"며 "저를 아껴주셨던 또 한 분의 어른을 떠나보내며 저도 꽤 나이를 먹었음을 실감한다. 삼가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빈다"고 한 변호사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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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 추모식에서 정세균 전 총리 (두 번째줄 맨 오른쪽), 함세웅 신부(첫 번째 줄 맨 오른쪽), 김선수 대법관(첫 번째 줄 오른쪽 두 번째) 등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인과 여러 활동을 같이한 김선수 대법관은 "변호사님께서는 아무리 암혹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 어느 자리에서나 변호사님이 계신 곳이라면 웃음이 넘쳐났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지라도 즐겁고 유쾌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라며 "세상은 여전히 한 변호사님의 지혜와 용기와 유머가 필요한 상황이다. 변호사님의 유머를 들으면서 사법개혁 작업에 매진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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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추모식에서 김선수 대법관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전 총리는 "(한 변호사는) 고향 선배님으로 저한테 굉장히 특별한 분"이라며 "우리나라에 여러 훌륭한 분들이 계시지만 한 변호사님처럼 다재다능하고 유연하면서도 정의로운 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까지도 가끔 찾아뵙기도 하고 통화도 하기도 했는데 너무 아쉽고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추도식에 참석한 고인의 전주고 후배 김기만 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은 "한승헌 선생님, 참 스승이 드문 시대에 사회생활 62년이 온통 삶의 귀감(龜鑑)이셨다"라며 "'선한 영향력'에서 아마도 당대의 최고가 아니셨을까. 평생 몸무게가 55kg을 넘은 적이 없었지만 선생님은 한 시대의 거인(巨人) 중 거인"이라고 말하며 한 변호사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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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를 일기로 별세한 '1세대 인권변호사'고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의 발인이 4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노제는 민변 전북지부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됐다. 전북지방변호사회와 전북대 법조동문회 등은 '고 한승헌 변호사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 한승헌 변호사님의 뜻을 기리겠습니다'라는 추모글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영결식은 30여분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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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광장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 고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추모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어 "아름다운 시인이었고 가슴 뜨거운 인권변호사였으며 우리 모두의 스승이었던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며 "육신은 떠나지만 앞으로도 우리 곁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용빈 민변 전북지부장은 "민변 창립회원이신 고인은 1965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신 이래 수많은 시국사건과 인권변호를 맡아주셨다"며 "어두운 시대의 여러 고난과 위험 앞에서 비켜서지 않는 모습으로 후배와 동지들에게 '어둠 속 등불'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생전 미해결 과제라고 말씀하신 '기본권의 확립과 인간의 존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평등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어 황민주 시민사회단체 대표의 추모사와 김용택 시인의 추모시, 왕기석 명창의 추모곡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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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광장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 고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추모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인은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현 사법고시) 8회에 합격한 뒤 법무관을 거쳐 서울지검·법무부 등에서 근무하다 196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분지(糞地)'라는 책을 써 반공법 위반으로 처음 기소된 작가 사건,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1965)을 시작으로 그의 50여년 인권 변호 활동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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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변호사는 그가 변호를 맡았던 시국 사건 가운데 가장 황당한 건으로 민청학련 사건을 꼽았다. 1974년 유신 통치에 반대하던 180명의 젊은이들이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이라는 이유로 비상군사재판에 회부되는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자 한 변호사도 변호인단에 참가한다. 당시 군복을 입은 재판관들 앞 오른쪽에 한 변호사가 서 있다. [사진=인터넷 갈무리]
민주화 이후 고인은 제도권에서 줄곧 '우리 모두의 나라'를 꿈꾸며 국민에 의한 사법 기틀 마련에 헌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도 주도했고,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17대 감사원장으로 임명돼 이듬해 정년퇴임하기까지 공직사회 부패척결에 힘썼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사법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아 사법제도 개혁에 앞장섰다. '국민에 의한 사법'을 강조하며 배심제도 도입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시집 '인간귀향' '노숙' '하얀 목소리'와 자신이 맡았던 시국사건들을 술회한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에세이 모음집 '피고인이 된 변호사' 등 도서 40여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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