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기업의 '정상 주가'는 허위공시를 바로잡고 거래가 정상화한 뒤의 가격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상 주가가 어느 시점에 형성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처음으로 제시된 판결이라는 법조계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1일 투자자들이 대한전선과 이 회사의 전직 임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원고 일부 패소 취지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 1만7000원에서 479원으로...대한전선 정상 주가 시점은
대한전선은 2012년 3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회수가능성이 낮은 매출 채권(대손충당금) 일부 또는 전부를 설정하지 않고 재고자산평가 손실을 인식하지 않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등을 공시했다. 누락액은 약 2300억 원이다.
이후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진 재무 상황을 정상적으로 공시했다. 1만7000원을 호가하던 대한전선 주가는 2000원대로 떨어졌다. 2012년~2014년 2000원 전후를 유지하다 금융위의 분식회계 발표를 앞두고 떨어졌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2014년 12월 대한전선의 분식회계를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한전선 주식은 같은 달 4일부터 이듬해 12월 8일까지 1년여 동안 거래가 정지됐다. 정지 때는 주가가 1200원, 1년 뒤 매매정지를 해제했지만 주가는 479원으로 폭락했다.
대한전선 투자자들은 2015년 회사와 전직 회사 대표 등을 상대로 "허위공시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78여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쟁점은 어느 시점의 주가를 정상 가격으로 봐야하는지였다.
■ 2심 '정상 공지' 시점...대법 '거래 정지 해제' 시점
1‧2심은 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정상화된 시점을 두고는 판단이 달랐다. 1심은 대한전선 측이 허위공시를 시작한 2012년 3월 주가와 주식 매매 거래 정지라 풀린 2015년 12월 주가(479원)의 차액을 배상금을 책정하고, 42억 원 가량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2심은 대한전선의 정상 공시가 이뤄진 2013년 11월(주가 2485원)까지의 배상 책임만 인정하고, 배상금 규모를 18여억 원으로 대폭 줄였다. 2013년 11월 거짓이 없는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때 회사의 재무상태가 악화됐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졌다고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3년 11월 당시 대한전선의 분식회계 사실이 공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의 평가가 주가에 온전히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며, 거래 정지가 풀린 2015년 12월의 주가(479원)를 정상가로 봐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대법원은 "회사의 분식회계 사실이 아직 공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가 대손충당금의 적립 여부 및 그에 따른 재무상태의 악화 사실을 공시했다는 사정만으로 회사의 전반적 신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이 사건 주식가격에 온전히 반영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 법조계 "분식회계에 대한 시장평가 반영돼야 정상 주가"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기업이 허위공시를 바로잡은 직후의 주가를 손해배상 산정 기준이 되는 '정상 주가'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첫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관계자는 "허위공시가 바로잡힌 뒤 형성된 주가를 '정상 주가'라고 보려면, 기업 측이 주가에 허위공시로 부양된 부분이 제거됐다는 주장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적시한 첫 판결"이라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투자자들의 법률대리인 김광중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정상 주가 형성에 관한 판단에서 쟁점이 되는 게 정상 주가가 언제 형성되는 건지에 대한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단이 정상 주가와 관련한 하나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준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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