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FTX는 고객 자산을 임의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FTX 고객들이 예치한 160억 달러의 60%인 100억 달러를 알라메다 계좌에 옮겨 놓았고, 이 중 10억~20억 달러의 행방이 묘연하다. FTX 자금 이전은 고객 동의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객의 돈을 위탁 받아 계약을 체결해주는 거래소는 회사 자산과 고객 자산을 철저하게 분리해서 회사에 어떤 일이 발생해도 고객 자산은 안전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대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또한 알라메다가 상당량의 FTX 발행 토큰을 자산으로 편입했다는 것은 모(母) 회사가 발행한 자산을 자회사가 사들였다는 의미여서 계열사간 불공정 거래에 해당된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FTX를 ‘제2의 엔론 사태’에 비유하며 “단순히 금융상 오류가 아니라 사기의 냄새가 난다. 엄청난 부의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엔론은 2000년 매출액 1100억 달러를 기록한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 기업이었으나 치밀한 분식회계를 통해 기업 부실을 은폐해온 사기극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2001년 12월 파산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악의 회계 부정 사건으로 기록된다.
파급 효과 측면에서 보면 FTX는 제2의 리먼 사태와 비교될 수 있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업계 4위였던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뱅크런이 발생하며 수많은 투자회사가 문을 닫고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됐다. 당시 모든 금융회사가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신용등급이 낮은 서브 프라임 대출과 이에 연계된 파생상품 투자가 이뤄졌다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리먼은 투자 대차대조표가 취약해 가장 먼저 무너졌을 뿐 뒤이어 수많은 금융회사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FTX 파산 이후로 글로벌 코인 대출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며 대출을 중단하고, 불안한 투자자들의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고,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반면, 테라·루나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스테이블 코인 시스템의 발상에서 출발했다. 테라 1개는 1달러에 고정되고, 루나는 담보 코인으로 가격이 변동하지만, 테라와 루나는 항상 교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2022년 5월 8일 앵커 프로토콜에서 대규모 테라 인출이 시작되면서 코인런(Coin run)이 발생했다. 테라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져도, 투자자들은 알고리즘에 의한 재정거래를 하지 않고, 테라와 루나를 모두 던지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지며 가격이 거의 ‘0’으로 수렴했다. 테라·루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금융 혁신 측면에서 의미있는 화두를 던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가격 방어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패닉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기존 금융권처럼 최종 대부자 역할을 맡는 중앙은행의 개입 없이는 이러한 시도가 실패할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이런 점은 앞으로 다가올 웹 3.0시대에서 탈중앙화 자율조직(DAO)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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