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사상 최악’으로 꼽혔던 한·일관계 개선이 기대됐다. 그러나 애초에 나는 이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일 관계가 개선되리라는 단순한 기대감에 대해서도 위화감을 느낀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일관계가 발전된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막혔던 한·일 간의 하늘길이 2022년 후반부터 다시 열렸는데, 2023년에는 한·일 간의 왕래가 다시 활발해지는 동시에 한·일관계 또한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바람과는 달리 새해 벽두부터 한·일관계를 둘러싼 문제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식민지배 시기에 일어난 강제노동 문제이다. 일본에서는 ‘징용공’ 문제로 불린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강제징용 해결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일본에서 온라인상으로 토론회를 시청했는데, 보고 있기가 힘들고 괴로웠다. 무려 10명이나 되는 발표자 및 토론자가 각자 입장에서 견해를 밝혔지만 ‘토론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 강제노동 문제 당사자인 피해자나 그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강제노동 문제는 지금 왜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양국 국교정상화 때 이미 해결된 것으로 여겨져왔다. 2005년,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던 노무현 정부에서마저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사법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피고 일본 기업이 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사법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반발했고, 피고 일본 기업들도 일본 정부 방침에 따라 배상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민사소송 당사자도 아닌 한국 정부가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 결과 피고 일본 기업의 국내 재산은 한국 사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현금화되어 원고에 대한 배상으로 충당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만약 일본 기업의 재산이 현금화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한·일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한국 정부로서도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정면으로 지적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과거 한·일 양국 정부는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평가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1965년에 국교정상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이라고 해석했고, 일본 정부는 그것을 한국 정부에 대한 경제지원으로 간주했다. 즉, 한·일 양국 정부는 식민지배의 책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양측의 의견 충돌을 피하고 타결을 꾀한 것이다.
1965년 당시 한·일관계를 둘러싼 동아시아 냉전 국제정세는 한·일 양국 정부로 하여금 국교정상화를 서두르게 했다. 이후 한·일관계를 규정하게 된 한·일협정에 따른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어느덧 ‘65년체제’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일관계의 발전은 65년체제하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처럼 활발한 민간교류가 가능한 것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은 65년체제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민지배에 대해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되 일관되게 법적 책임을 부정해온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그 틀을 뒤집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한국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의 결과로,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미 65년체제를 뒤흔들 판결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늦추도록 사법부에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이 바로 사법농단 사건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더 이상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일 양국 정부는 65년체제에서 모호해진 식민지배 책임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라는 보복조치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고, 한국 정부 또한 GSOMIA 파기를 언급하는 등 맞섰다. 한국에서는 ‘NO JAPAN’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당시 한국 사회는 ‘NO JAPAN’이 아니라 ‘NO ABE’라고 밝히며, 과거의 이른바 ‘반일’ 운동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대중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인지할 수 없었고, “한국은 역시 반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2019년 한·일관계는 ‘사상 최악’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한·일관계가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사람들은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시기에 65년체제 유지가 중요시되었던 것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보수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당시 이낙연 총리가 아베 일본 총리에게 “한국도 (한일)협정을 존중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일본 정부에 직접 식민지배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없었다.
어쨌든 취임 당초부터 한·일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인 윤석열 정부는 강제노동 문제의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공개토론회’에서 밝혀진 외교부의 ‘해결책’이란 한국 측 재단이 피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 기업에 대해서도 마치 면책하는 것과 같은 방안으로 보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단순한 금전적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일관되게 가해 기업의 사과를 통한 자신의 존엄성 회복을 바라고 있으며, 그 증거로서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문제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또한 일본 정부가 일관되게 식민지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정해온 것이 사실이고, 그 태도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정부 방침에 따르는 피고 일본 기업들과 원고 피해자들 사이에서 어떤 화해 방안이 도출될 가능성 또한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일본 정부가 65년체제의 틀을 중요시하는 이상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는 일도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원하는 해결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해서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외교부 안을 비롯해 ‘공개토론회’에서 거론된 일부 주장들을 듣다 보면, 마치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한·일관계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피해자들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이 문제는 피고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거절한다고 해도 일본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 편에 서서 일본 정부와의 협상에 임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결국 현재 한·일관계는 65년체제에 얽매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경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5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양국 외교장관이 피해자들을 소홀히 한 채 합의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던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사회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혼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본래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는 과거를 직시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다. 설사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원점으로 돌아가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일본 사회가 주체적으로 마주보아야 할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리 없다. 1965년 한·일 양국이 처한 각자의 사정을 우선시해 타협한 국교정상화에서 놓친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일본 사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숙제는 피해자 구제의 문제이고, 현대 국제사회가 가치를 무겁게 여기게 된 인권문제이기도 하다. 그저 한·일관계를 저울질해 취사 선택할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피해자를 생각하면 서둘러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지금까지 오랫동안 싸워온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졸속 결론을 내려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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