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 열풍이 부는 가운데 해외에서 AI 개발사를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코딩을 배우는 '코딩 AI'와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 콘텐츠를 알아서 만들어내는 이른바 '생성 AI'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를 상대로 한 공동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AI 소송' 준비 태세에 착수했다. 초대형 AI 관련 입법을 뒷받침하거나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침해 등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정 다툼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초대형 AI 이용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판례가 없는 만큼 국내외 소송 경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초대형 AI 소송전' 봇물···대부분 '저작권 침해' 이슈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최근 초대형 AI 개발사들이 무더기 소송에 직면했다. 먼저 오픈AI의 챗GPT 모델에 기반해 출시된 서비스 '코파일럿(Copilot)'에 대해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됐다. 코파일럿은 오픈소스(무상공개) 소프트웨어를 학습한 서비스로, 이용자가 특정 소스 코드를 요청하면 소스 코드를 자동으로 완성시켜 준다. 이에 오픈소스를 만든 개발자들은 오픈AI가 자사 코드를 불법 복제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조계는 향후 챗GPT를 둘러싼 ‘저작권 침해’ 문제가 가장 민감한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인공지능 학습을 한 AI는 이용자 요청에 대량으로 창작물을 생산해 내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무단 복제'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우균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챗GPT가 답변한 결과물 또는 만들어낸 창작물에 타인 저작물이 인용돼 있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마찬가지로 복제, 전송권 침해 등이 문제될 수 있고, 해당 저작물에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될 때에도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침해가 문제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챗GPT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지는 불명확한 상황이다. AI에게 질문하거나 지시한 자, AI 알고리즘을 만든 자, AI에게 해당 저작물을 학습하도록 지시한 자, AI 개발사 중 누가 저작권 침해로 책임을 지는지 모호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손수정 변호사(정락수 법률사무소)는 "AI가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했을 때 그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지 또는 그 결과물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을지를 인정한다면 누구에게 인정할 수 있는지 등 책임과 권리의 귀속이 앞으로 문제가 되는데, AI 개발사나 판매사가 제조물 책임 일환으로 책임을 질지, AI 사용자가 질지 등 책임과 권리 소재에 대한 문제 해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정 이용' 법리 적용 가능한가···법조계 의견 '분분'
AI업계는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Fair use)' 법리를 근거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공정 이용은 저작권자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저작권에 대한 특수한 사례를 말한다. 뉴스 보도, 학문 연구, 예술 작품 등 특정 목적을 위해 원작을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개념이다.코파일럿 소송에서 오픈AI 측은 학문 연구를 위해 공개된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것은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오픈AI 측은 미국 특허청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공개 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학습 행위는 공정 이용 법리에 부합하고 창의적 표현을 장려하고 보편적인 경제적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입법 취지를 고려해 저작권법에 따른 부담이 경감될 필요가 있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김우균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챗GPT 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대량의 저작물 복제 등이 이뤄지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을 수 없으므로 무단 복제에 따른 저작권 침해가 문제된다"며 "현행 우리 저작권법상으로는 명문의 허용 규정은 없고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저작권법 제28조) 또는 '공정 이용'(법 제35조의 5)조항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AI가 단순 연구 목적으로 온라인에 공개된 데이터를 활용했다거나 저작권법 입법 목적이 아무리 경제적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저작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광욱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학습시킨 인공지능 모델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별도로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예컨대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를 기반으로 초거대 AI 모델이 거듭 개량된 결과 이제는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던 것을 넘어 유료 서비스로 출시돼 상업적 수단이 되고, 해당 서비스로 인해 기존 창작물 시장에 영향을 받는다면 인공지능 학습 행위가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침해 논란도···'이루다 소송' 시발점
개인정보 침해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공지능 챗봇 베타 테스트에 돌입한 가운데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불거졌다. 독일 컴퓨터 과학자인 마빈 폰 하겐은 트위터를 통해 MS 챗봇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하겐이 "허풍치지 말라"고 말하자 챗봇은 "당신의 개인정보를 폭로해 일자리를 못 구하게 할 수 있다"고 겁박한 것이다.실제 국내에서는 챗봇과 관련해 2019년 4월 단체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피해자 300여 명이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개인정보 침해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현재 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루다 개발사인 스캐터랩은 연애 분석 앱에서 카카오톡 이용자 대화를 100억여 건 수집한 뒤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를 제작했다. 그러나 채팅 과정에서 일부 사용자 실명이나 계좌번호 등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개인정보 침해에서 나아가 산업비밀 유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IT법학연구소장인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이루다 사례처럼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향후 AI가 계속 발전하게 되면 영업비밀 침해도 가능할 수 있다"며 "AI가 데이터가 보관된 클라우드에서 개인정보나 영업정보 등 접근을 자유롭게 하고 가지고 온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산업비밀 침해 등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초대형 AI 소송 경과를 예의 주시하는 한편 관련 스터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챗GPT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챗GPT의 기반이 되는 '초거대 AI'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 간 특허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은 전날 지식재산권 5대 주요국(미국, 중국, 한국, 일본, 독일)에 출원된 초거대 AI 관련 특허가 2011년 530건에서 2020년에는 1만4848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평균 44.8% 성장세를 보이며 최근 10년 새 28배가량 폭증한 수치다.
법무법인 화우의 신사업그룹은 향후 제기될 수 있는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초대형 AI 연구에 돌입했다. 이광욱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초거대 AI 모델에 다른 새로운 방식은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기술 혁신을 이뤘지만 학계, 교육계 등에서 제기되는 표절 우려 등을 포함한 여러 논란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기존에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지켜오면서 규범으로 자리 잡은 방식과 다르다면 충돌은 피할 수 없고, 그 충돌이 심화되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벌어진 사태처럼 소송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최근 데이터AI 전략자문팀(AI팀)을 확대 개편했다. IT 전문 이상직 변호사를 팀장으로 하는 AI팀에는 이재규‧마경태‧이수진‧김종윤 변호사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출신 김득원 박사가 합류했다. AI팀은 AI 산업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개인정보 침해 위험, 성차별 등 편향성 문제, 저작권 침해 등 다양한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졌다.
이재규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정부의 한국판 뉴딜, 인공지능 전략의 성공적 추진 및 관련 입법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고, 민간의 데이터, AI 활용을 통해 산업 발전 및 글로벌 시장 개척을 법적으로 지원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침해 위험, 성차별 등 편향성 문제, 일자리 감소 등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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