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이다. 탈동조화(decoupling)를 주장하는 강경론이 득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EU는 물론 미국과 영국도 탈리스크(de-risk)로 대변되는 온건론을 채택하였다. 공급망의 전면적인 분리를 추구하는 탈동조화와 달리 탈리스크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경제 교류의 부분적 차단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명시적으로 비판하는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3월 30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에서 외교를 통한 탈리스크를 처음 언급하였다. EU와 중국 관계는 단순한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에 탈동조화는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 따라 EU는 위험하지 않은(un-risky) 경제 교류에는 제한을 두지 않을 계획이다. 사실 EU의 입장 변화는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 서방 지도자로서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에 의해 예고되었다.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방중은 이를 재확인하는 계기였다.
지난달 말부터 미국도 탈동조화보다 탈리스크를 더 강조하고 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4월 25일 양국 간 경제적 상호 의존이 밀접하기 때문에 탈동조화가 미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경제 전반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틀 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과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새로운 워싱턴 합의’를 비판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미국 제조업이 쇠퇴하는 차이나 쇼크에 대한 대응책으로 탈동조화 대신 탈리스크를 제안하였다. 이 전략은 규제의 범위는 제한하되 그 강도는 높이는‘작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 제재는 국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첨단 제품과 서비스에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22년에 상무부 산업보안국은 대중 제재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 요청 중 약 69.9%를 승인하였다. 즉 대중 제재 목록에 있는 미국 첨단 제품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중국에 수출되었다.
이러한 전략적 변화는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해 양국 간 고위급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성숙(strategic maturity) 개념에 투영되어 있다. 지난 2월 초 미국 영공에 등장한 중국의 정찰풍선으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방중을 연기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 갈등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사건을 크제 문제 삼지 않았다.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지난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중국과 협상 중인 옐런 재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방중하게 되면 양국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G7 회원국 중 가장 강경한 대중 정책을 고수해온 영국에서도 탈동조화를 폐기하려는 징후가 등장하였다. 제임스 클레버리 외무장관은 지난 4월 25일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국과 협력하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에 중국을 고립시키는 신냉전은 영국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연설하였다. 이러한 인식 전환에 따라 대중 전략의 목표가 대중 경제 교류의 전면적 차단이 아니라 중요 공급망에서 대중 의존도 축소로 재설정되었다. 따라서 영국 기업은 미국, 아세안, 호주, EU 기업처럼 국가 안보 위협과 무관한 분야에서 중국 기업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서방은 탈리스크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EU 모두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전쟁 발발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제한 없는 협력을 통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지원이 서방의 대러 제재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서방을 긴장시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화해시킨 것처럼 중국이 휴전협상을 타결하는 데 성공한다면 미국과 EU는 세계 정치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교역을 전면적으로 단절한다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IMF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4.9%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반구의 기여도는 인도(15.4%)보다 작은 13.7%에 불과하다. 향후 5년간에도 중국(22.6%)과 인도(12.9%)가 미국(11.3%)보다 더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망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2028년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가 G7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작년 5월 출범 이후 윤석열 정부는 경기 침체와 수출 부진의 이중고 속에서도 탈동조화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70% 넘는 개방경제에서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을 증대하지 않고서 14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발생하기 전에 정부는 탈리스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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