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주범인 일본 제국주의가 망한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수용해 건국한 일본과 그 피해국 대한민국의 외교통상에서 역사적인 성과를 거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일본의 배상금과 차관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의 재원을 마련하고 시동을 건 것이다. 최고 성과로 제2의 ‘쌀’을 생산하는 포항제철(포스코) 건설을 통해 경제성장의 기반을 만들었다. 포스코는 한·일 간 협력을 보여준 대표 랜드마크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과 많은 학생들은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 시위를 했지만 김대중 의원은 홀로 찬성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용기로 30년이 지난 1998년 폐쇄적인 좌파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와 ‘21세기 새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양국 간 문화 개방을 결정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가 가능했다. K-팝, K-드라마, K-무비와 더불어 K-푸드, K-뷰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수출·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다시 25년이 지나 새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통해 새로운 한·일 관계의 상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공시적·통시적·현상학적 근거와 분석을 통해 글로벌 프로젝트 한·일 합작 ‘민항기 시장’ 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공시적 분석인 글로벌 트렌드로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세계 민항기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854억5000만 달러(약 113조5203억원)며, 2021~2026년에 연평균 12.32%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2026년에는 매출액이 1730억8000만 달러(약 229조9367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한·일 민항기 합작 제작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 독일과 피해국가 프랑스가 합작으로 만든 항공사 ‘에어버스(Airbus)'다. 시작은 1969년 보잉 등 미국 기업이 독주하던 민항기 시장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독일 합작으로 에어버스가 설립되었다. 그해 첫 기종 A300 개발을 시작해 1974년 운항에 들어갔다. 2000년 다시 유럽 방위산업체들이 통합해 EADS그룹을 만들고 에어버스는 자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탈냉전 이후 모기업(EADS)이 경영난에 처하자 2017년 에어버스와 본사가 통합해 에어버스 SE로 재편되었다.
현재 대주주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국·공유 지주회사로 지분을 각각 11.1%, 11.1%, 4.2%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73%는 유럽 증시(EURONEXT)에 상장되어 있다. 에어버스는 영어 Air(항공)와 독일어 Bus(버스)의 합성어다. 항공 시대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버스처럼 항공으로 대량 수송이 가능한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함축된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설립 당시 프랑스와 독일은 민항기 각 기종별 제작 작업량에서 각각 35%를 배정한다는 원칙을 세워 철저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A380은 프랑스와 독일의 분담률을 맞추기 위해 함부르크에서 만든 동체 섹션을 툴루즈로 해상 이동해 조립했다가 다시 함부르크에서 인테리어와 최종 테스트를 한 후 인도하는 체제를 통해 약속을 지킬 정도다.
에어버스 부품 공장은 영국을 포함해 4개국에 흩어져 있다. 프랑스 툴루즈나 독일 함부르크 에어버스 최종 공장은 미국 보잉에 비해 조그만 격납고 수준이다. 각 사업장별 생산 기종은 프랑스 툴루즈가 A320 등 5종에 대해, 독일 함부르크가 A318과 A330 등 3종에 대해 최종 조립과 동체섹션·인테리어를 담당한다. 중국 톈진에서 A321 등 3종을 최종 조립(월 6대)하고, A330 인테리어를 마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어버스 연간 수주량은 800대 정도다. 1974년 대한항공도 처음 A300을 도입했다. 오늘날 대형 민항기 시장은 에어버스와 보잉이 양분하고 있다.
중국도 민항기 제작 시장에 뛰어들었다. 정부가 주도하고 산하 ‘코맥(COMAC)'사를 설립해 시범 운행 중이다. 중국 민항기 수요가 한 해 약 420대로 조사됐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을 방문해 에어버스 160대를 챙겼다. 중국 측 전략인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얻는다’는 술법을 민항기에도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70~110명이 탑승하는 중소형 민항기 생산에는 이미 여러 나라가 뛰어들었다. 대표적으로 브라질, 캐나다 회사들은 성공했으나 일본 회사들은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 미쓰비시 스페이스제트와 가와사키 중공업이 민항기 생산에는 성공했으나 상용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두 번째인 통시적 분석, 즉 우리 역사 안에서 한·일 간 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의 성공 모델이 있다. 역사적으로 한·일 국교 수교와 공동선언을 통해 포철 건설·한류라는 ‘성공 DNA’가 축척되어 있다. 이를 기반으로 철을 토대로 한 한류를 타고 민항기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제조 강국 한·일 민항기 연합 제작 사업은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두 나라 강점인 원천기술과 응용기술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미 항공산업(삼성항공)을 경험한 삼성전자, 방산기업 한화, 카이(KAI)와 이미 시도한 일본 미쓰비스, 가와사키중공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민항기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이다.
최근 이철우 경상북도 지사와 브라질 엠브라에르(Embraer IPA) 민항기 제작사가 컨설팅·정비·인력훈련지원 설립 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969년 설립된 엠브라에르는 브라질 최대 수출기업으로 임직원 1만800명과 연 매출 50억 달러(약 6조5000억원)를 올리고 있는 최고 효자 기업이다. 세계 중형 민항기 시장을 30% 점유해 선두에 있고, 전 세계에 8000대 이상 판매했다. 민항기 납품 대수로는 보잉과 에어버스에 이어 세계 3위다. 브라질 민항기 사업처럼 한·일이 함께하면 높은 부가가치율과 산업생산유발·연관효과로 수많은 일자리와 큰 수익 창출을 보여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상학적 분석, 즉 ‘지금’ ‘여기’ 신 한·일 관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해 제안하는 한·일 민항기 합작 사업은 ‘시대정신(Zeitgeist)'에 딱 맞아떨어진다. ‘제3의 한·일 관계 성공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양국 지도자인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 기시다 총리가 이를 인식하고 적극 추진할 때 속도를 낼 수 있다. 한·일 제조업이 연합하면 프랑스·독일 제조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축척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민항기 제작에 엔진, 완제기, 기계·전자부품(티어 1·2·3), 수리정비의 MRO, OEM, 항공사까지 다양한 분야와 기업이 참여한다. 한·일 민항기 합작 사업을 통해 해빙무드에 들어간 신 한·일 관계가 더욱 날개를 달고, 상호 국민감정도 좋아지고 함께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
최근 기시다 총리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대담하면서 “다음 기회에 한국 지방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미국 부시 대통령이 방문한 안동 화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추천한다. 신공항 건설이 무르익고 있는 경북 지역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 민항기 합작 프로젝트를 논의하는 것이다. 한·일 양국이 함께하는 신성장동력 발굴이 담대한 신 한·일 관계를 상징한다.
김택환 교수 주요 이력
▷독일 본(Bonn)대학 언론학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중앙일보 기자·국회 자문교수 역임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 조직위원장 ▷현 경기대 산학협력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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