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올 들어 안중근 의사 전시실과 윤동주 시인 생가 운영을 잠정 중단한 사실이 알려져 한국 내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내부 수리를 통한 임시 휴관임을 주장했지만, 일각에서는 한·중 관계 악화에 따른 보복성 조치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국은 지난 4월 이후 랴오닝성 다롄 뤼순감옥 박물관 내 안중근 전시실 문을 닫은 데 이어 지난달에는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에 있는 윤동주 시인 생가 관람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이 시설들은 내부 공사로 인해 대외 개방을 잠시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같은 날 중국 관영매체도 "정상적인 내부 수리"며 한국 일부에서 생트집을 잡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주장을 했다. 윤동주 시인 생가 운영을 중단한 이유는 건물 중 한 곳이 붕괴 위기에 놓여 수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안중근 의사 전시실도 누수 문제로 박물관 내 다른 전시실과 함께 문을 닫았다는 게 이 매체의 설명이다.
통상적인 보수 유지 작업으로 사적지 운영을 중단한 것인데, 한국 언론이 사실 관계를 무시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양국관계로 연계시켜 반중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매체는 주장했다.
이와 관련, 주중대사관 고위 관계자도 7일 "안중근 전시실과 윤동주 생가 운영 중단은 보수공사 때문이라고 중국 측이 확인해줬다”며 “관련 조치가 완료되는 대로 재개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석연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유적지 현장에는 공사한 흔적도 없을 뿐더러, 공사가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난다는 안내 내용도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악화한 한·중 관계와 한·미·일 밀착 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안중근 의사 전시실과 윤동주 시인 생가 폐쇄는 대국 답지 못한 “치졸한 행동”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중국은 양국이 갈등을 빚을 때마다 보복성 조치를 해 온 선례가 있다. 2000년대 초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이 논란이 됐을 때 중국은 한국인의 고구려 유적 방문을 일시 차단한 바 있다. 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한·중 관계가 악화하던 2017년 3월에도 하얼빈역사 리모델링을 이유로 역사 내 있던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인 안중근 기념관을 돌연 철거·이전했다가 2년 후인 2019년 공사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복원했다.
한·중 관계 악화 속 중국이 개보수 등 이유를 내세워 추가적으로 독립운동 유적지 운영을 중단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이다. 주중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보훈 사적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강조한 뒤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들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중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는 상하이·충칭·항저우·류저우 등지에 소재한 임시정부 청사를 비롯한 항일운동 관련 유적지가 수백여곳에 달한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번화가에 자리잡아 주변은 모두 상업중심지로 재개발된 상태다. 과거 재개발 과정에서 청사가 헐릴 뻔할 위기도 있었지만, 한·중 정부 간 긴밀한 소통을 통해 임정 청사 철거를 막았던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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