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 "설계·시공·감리 영역별로 책임과 권한 부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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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롬 기자
입력 2023-08-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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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저가 입찰·깜깜이 공사비도 부실공사 반복 원인···안전은 비용 아닌 투자"

고창수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 사진유대길 기자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국내 건설업계 부실공사가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으로 '최저가입찰제'를 꼽으며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주고 공사금액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최대한 비용을 아끼려고 하는 분위기가 건설업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가 한번 터지면 당초 투자해야 했을 금액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요. 건설 안전에 들어가는 비용은 '비용'이 아닌 '투자'입니다. 보험을 들듯이 혹시라도 날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해서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 하면 안 됩니다. 안전 비용은 '아껴도 된다'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해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이어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까지 건설업계에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1995년 사상자 1500여 명을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그동안 국내 건설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국형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표한 지하 주차장 철근 전단보강근 누락 아파트도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전반에 걸쳐 총체적 부실이 쌓인 결과라는 평가다.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철근 누락 사태 이후 전국 무량판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가 진행되는 데 대해 "2014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 때는 PEB 구조가 난리였다"며 "사고가 날 때마다 구조에 집착해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데, 구조 문제만이 아니라 건설업계 시스템 자체가 문제인데 비용과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창우 회장은 건설업계 분야별로 신뢰가 낮고 협력이 어려운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비슷한 사고는 또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설 전문영역별 협업 통해 관리·감독 강화할 수 있어"

고 회장은 인터뷰 내내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전문영역별 협업 체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이 같은 사고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지금은 건축사가 발주처에서 사업을 수주할 때 건축사가 모든 분야를 총괄한다. 모든 책임과 권한은 건축사에게 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하청업체로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업체는 권한이 없어 또 책임을 피하려 한다"며 "각 분야에 권한을 주고 그만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발주처가 건축사와 계약을 맺고 건축사가 모든 하청을 내리는 현 구조에서 발주처가 구조기술사 등 각 분야별 전문업체들과 분리 계약을 맺고 책임지게 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내용을 담은 '건설안전특별법(가칭)'은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는 최근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구조기술 전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건축사들이 설계부터 감리 전 과정을 독점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 회장은 "건축법 23조에서 건축물 설계는 건축사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건물에 철근에 몇 개 들어가야 하고 기둥 사이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엔지니어링(구조설계) 능력은 구조기술사들이 갖고 있는데 현행법상으로는 건축사가 모든 권한을 독점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축사 제도를 처음 도입했던 1960년대 초반 제정된 건축법이 60년이 지나도록 바뀐 게 없다"며 "엔지니어링 능력을 가진 기술자들에게도 명확한 권한을 부여해야 근본적으로 건설업 생태계 문제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 회장은 '구조안전심의 대상 건축물'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 건축심의는 건축물 허가를 받으려면 꼭 거쳐야 하지만 구조안전심의는 특수구조건축물만 받게 돼 있다. 특수구조건축물로 지정되면 설계·시공·감리 등에서 관리가 강화되고 구조 심의가 의무화된다. 그는 "최근 국토부에서 무량판을 특수구조건축물로 포함시킨다고 했는데 이전까지는 철근이 잘 들어가 있는지 사전에 따로 체크할 방법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고창수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이 아주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이 아주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최저가 입찰·깜깜이 공사비 개선돼야···안전 비용은 아낄 수 없어"
 
고 회장은 '최저가 입찰제'와 '깜깜이 공사비'도 국내 건설현장에서 사고와 부실공사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꼽았다. 최저가 입찰제는 공사 입찰에 있어 가장 낮은 가격을 써 낸 낙찰자를 선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는 "종합건설회사가 공사를 수주하면 전문건설업체로 하청이 내려가는데 '적은 돈으로 안전하고 빠르게'는 불가능하다. 해외에서는 적정 공사비 대비 10% 이상 보장해주게 돼 있는 등 그 나라만의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무조건 최저가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사 계약금액 세부 비중을 건축주만 알도록 '깜깜이'로 돼 있는데 어느 정도 보수를 받는지 모르는 하청업체로서는 많은 비용 들여서 책임감 있게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며 "공사금액 실명제 등 투명하게 공사비를 공개하지 않으면 부실시공, 건설안전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계 오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건축정보모델) 활성화도 강조했다. BIM은 3차원 정보모델을 기반으로 시설물 생애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통합해 활용할 수 있도록 시설물 형상과 속성 등을 정보로 표현한 디지털 모형을 뜻한다. 고 회장은 "재건축은 짧아야 10년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가 누락되고 오류가 생긴다"며 "데이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BIM 도입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접목하기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서울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초고층 건축 추진, 고급화 경쟁 흐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물론 겉모습을 근사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구조 안전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과거에는 전체 아파트 공사비 가운데 골조공사비가 30%, 마감비용이 70%였다면 지금은 마감비용이 더 높아져서 20대 80 정도로 골조 비용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고 회장은 "지금 시공사들은 고급화에 치중하고 안 보이는 건 최대한 뺀다는 마인드인데 안전과 직결된 비용을 아끼려 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해외선 분리 발주 인정···현재 건축-구조는 협업 아닌 하청관계"
최근 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와 대한건축사협회 간에 책임 소재 공방이 치열하다. 두 단체 간 대립이 격해지면서 건축사만 설계·감리 행위를 하도록 한 현행법을 놓고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건축사협회 측은 건축구조기술사회 측 분리 발주 주장에 대해 '건축과 구조는 협업 관계이며 분리하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건축구조기술사회는 "미국, 일본, 유럽부터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도 건축과 구조를 분리 발주해 전문성을 인정하며 협업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건축구조설계 업무를 건축사의 협력자로 규정하고 저가, 빠른 용역 등을 강요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건축사협회 측은 "건축법령상 구조계산과 구조도면 작성 업무는 건축구조기술사가 작성하도록 보장돼 있다"며 건축과 구조는 하청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건축구조기술사회는 '규정과 현실은 다르다'고 반박한다. 건축구조기준 총칙에서 책임구조기술자가 건축구조물에 대한 구조설계도서 작성, 시공상세도서 구조적합성 검토, 공사단계에서 구조적합성과 구조안전 확인 등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로 구조기술사에게 구조도면 작업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축구조기술사회는 "현실은 우리가 구조계산 용역만 맡고 구조도면 작업은 건축사가 다 한 뒤 검토·날인만 기술사에게 요구하는 게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축사 측에서) 애초에 구조도면을 그릴 때 각종 단면에 대한 구체적 상세도를 그리지 않고 기본적 내용만 담은 일반적 상세도만 그려서 우리에게 검토 요청을 해온다"며 "그 정도 상세도만 검토한다는 것은 간단한 오타 정도 체크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LH 아파트 철근 누락 원인으로 꼽힌 '설계상 오류'와 관련해  "첫 번째로 설계사 도면에서 오류가 났을 수 있고, 다음으로 구조기술사들이 체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 있다"며 "설계 발주 이후 쪼개기 하청이 반복되다 보니 인력 부족과 전문성이 결여된 기술자들로 인해 관리감독 기능이 부실해질 수 있다. 현실적 문제를 떠나 부끄러운 얘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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