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서 많이 흘러나오는 단어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파산'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파산!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단어인가!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벌써 신물이 날 지경으로 들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정책금융을 공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제는 기업 부채도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대기업은 괜찮다지만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 부채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그 뒤에 꼭 따라오는 이야기가 있다.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회생 또는 파산 신청을 하는 개인과 법인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이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빚을 내서 쓸 수밖에 없을까라고 우려하면서도 그 끝은 결국 파산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이것이 초래할 경제사회적 파장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에 대한 근심이 필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요즘 세태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심리적 상태는 과연 어떠할까? 분노와 원망, 후회와 좌절, 그리고 복수!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이 수많은 사람들 가슴속에서 들끓고 이것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우리의 삶을 압박해 올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피와 땀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허탈감이 사회적으로 팽배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는 체념과 이러한 상태를 초래한 자책과 사회에 대한 원망, 그리고 수많은 생각과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질 우려도 높다. 이러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욱 불안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민생의 어려운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있던 문제다. 광복 직후 상황을 묘사한 염상섭의 유명한 소설 '두 파산'은 그 좋은 예다. 소설가 염상섭은 철저한 사실주의적 묘사로 그 시대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파헤친 뛰어난 작가다. 그의 단편소설 '두 파산'은 194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광복 직후 우리나라 서민들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필자는 이 소설의 묘사 한 줄 한 줄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읽었다. 이 소설에는 놀랍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서민의 삶의 과정과 매우 유사한 당시 서민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어느 자영업자가 파산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파산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이러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자 한다면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정례의 어머니는 소학교와 중학교를 끼고 있는 문방구 '점빵'을 작년 봄부터 시작하였다. 물론 돈이 없어서 집문서를 담보로 하여 3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요즘 말로 주택담보대출이다. 대출금으로 보증금 8만원, 월세 8000원에 가게를 빌렸다. 문구점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남은 돈으로 학생들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 과자며 문방구 등 상품을 들여놓았으나 규모가 크지 않아 매출이 시원치 않다. 그래서 고심 끝에 코흘리개 친구인 김옥임에게 10만원을 빌린다. 사금융에 손을 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금리가 월 20%라는 점이다. 옥임이는 지난 9개월 사이에 매월 2만원씩 꼬박꼬박 이자를 받고 일부 배당금까지 받아 무려 20만원을 이미 챙겼다. 그런데 정례 엄마의 사업이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지자 옥임이는 빌려준 10만원을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례 엄마는 교장선생님 같은 영감에게서 5만원을 또 빌린다. 이 교장 영감은 광복 전에 오랫동안 보통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일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본인은 이를 밝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매달 정례 엄마의 가게에 찾아와 월 15%인 이자 7500원을 꼬박꼬박 받아간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이제 옥임이에게 줄 이자를 갚지 못하게 된다. 즉 원리금 연체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체가 8개월 누적되자 이자만 12만원이 되었다. 이제 옥임이에게 갚아야 할 돈은 원리금 22만원으로 늘었다. “평생 빚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는데 펀펀히 노는 남편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시작한 노릇이라서 은행에 30만원이 그대로 있고 옥임에게 22만원, 교장 영감에게 5만원 도합 57만원 빚을 어느덧 걸머지고 앉은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아니 오고 앞이 캄캄하여 양잿물이라도 먹고 싶은 요사이의 정례 어머니다.” 염상섭은 이렇게 묘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그대도 두고 볼 옥임이와 교장 영감이 아니다. 이들은 정례 어머니에게 돌려막기를 강요한다. 마치 요즘 카드회사들이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꾀듯이 말이다. 1940년대와 2020년대의 정말 놀라운 싱크로율이다. 옥임이는 정례 어머니에게 자기 빚 22만원을 교장 영감에게 갚으라고 요구한다. 즉 옥임이가 교장 영감에게 진 빚을 대신 갚으라는 것인데 이는 교장 영감에게서 돈을 빌려 자기에게 갚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게 바로 돌려막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례 어머니는 분개한다. 코흘리개 친구가 어떻게 자기에게 이럴 수 있는가? 그러나 옥임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례 어머니에게 빚을 갚으라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난 돈밖에 몰라. 내일모레면 거리로 나앉게 된 년이 체면은 뭐구, 우정은 다 뭐냐? 어쨌든 내 돈만 내 놓으면 이러니저러니 너 같은 장래 대신 부인께 나 같은 년이야 감히 말이나 붙여보려 들겠다던!” 젊은 시절 동경 유학하며 신여성운동이며 연애며 멋지게 놀던 이 친구가 이제는 돈 갚으라고 사람들 앞에서 강짜를 부리고 자신을 욕보인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눈물이 핑 돈다. 이렇게 옥임에게 한번 당하자 이번에는 교장 영감이 다가와 자기 조카 돈을 써서 옥임이의 빚을 갚으라고 한다. 또 돌려막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22만원 빚을 갚기 위해 2만원 현금과 석 달 안에 남은 20만원을 갚겠다는 증서를 써서 교장 영감에게 넘긴다. 물론 그 석 달 동안 이자는 또 불어난다. 원금과 이자, 그리고 불어난 이자에 대한 이자가 계속 불어난다. 정례 어머니는 결국 그 20만원을 갚지 못하고 파산한다. 그리고 그 문구점 가게는 교장 영감의 딸에게 넘어간다. 옥임이와 교장 영감의 수작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