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무척 덥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서민과 노약자는 생존에 위협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기후변화가 벌써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우리 정부는 다른 주요국들과 마찬가지로 2050년 탄소중립을 국제사회에 약속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기후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나의 행동, 예를 들어 ‘과도한 자동차 의존증’을 바꾸도록 하는 충분한 유인책을 우리 사회에서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신속하게 실행에 옮겨야 할 필요가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는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일본에서는 이를 줄여서 GX라 칭함)을 실현하기 위해 최근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2023년 2월에는 “GX 실현을 향한 기본 방침”을 각의에서 결정하였고 이어 'GX추진법'과 'GX탈탄소전원법'을 제정하여 녹색전환을 위한 법적 기초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법률들에 의해 도입되는 녹색전환정책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GX경제이행채(정확하게는 탈탄소성장형경제구조이행채)' 발행이다. 일본 정부는 녹색전환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과 기술에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기시다 정부는 민관 합계로 2023년부터 향후 10년간 약 150조엔을 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GX경제이행채'를 발행하려 한다. 채권 발행 규모는 향후 10년간 약 20조엔 규모며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에너지·원재료의 탈탄소화와 수익성 향상에 기여하는 혁신 기술 개발이나 설비투자 지원에 투입된다. 이 채권은 2050년까지 상환하도록 하였으며 채권 상환에 필요한 재원은 새롭게 도입되는 탄소가격제도(화석연료부과금, 특정사업자부담금)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8월 23일자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24년도 예산에서 2조엔을 넘는 녹색전환 분야 예산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10년간 매년 2조엔 넘는 규모로 예산을 편성하여 투자하고 이에 소요되는 자금은 'GX경제이행채'로 조달하는 방식의 투자모델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성장지향형 카본 프라이싱 도입'이다. 이 조치는 'GX경제이행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상환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기능한다. 먼저 탄소에 부과되는 '화석연료부과금'을 도입한다. 2028년부터 화석연료 수입업자 등 사업자에 대해 화석연료에서 유래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따라 화석연료부과금을 징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아직 단위당 부과금 액수를 얼마로 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남아 있지만 화석연료에 대한 포괄적인 탄소세를 본격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시행까지 아직 5년이나 남아 있어서 즉각적인 탄소 배출 저감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녹색전환을 어느 정도 달성한 후 본격적으로 탄소가격제도를 시행한다는 전략을 구사한다. 기업과 산업에 부담이 급격하기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또한 이 제도가 경제주체의 행동을 바꿀 만큼 충분한 유인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위당 부과금을 충분히 높은 수준으로 설정해야 하나 일본 정부가 이 정도 수준으로 부과금을 설정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배출권거래제도도 보다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는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운영되는 GX리그라는 배출권거래제도가 2026년부터 다배출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며 발전사업자에 대해서는 EU와 동일한 '유상옥션' 방식을 통해 2033년부터 '특정사업자부담금'을 단계적으로 징수할 계획이다.
셋째는 'GX추진기구(탈탄소성장형경제구조이행추진기구)'를 설치한다. 이 추진기구는 민간기업의 녹색전환투자에 대해 채무보증 등을 포함한 금융 지원을 실시하며 화석연료부과금과 특정사업자부담금을 징수하고 배출권거래제도를 운영하는 등 정책 주체로 활동한다. 추진기구는 경제산업성 장관에게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 주체와 수단을 통해 일본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먼저 철저한 에너지 절약 추진이다. 중소기업 등에 대해 에너지 절약을 위한 투자를 지원하며 주택·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사업을 지원한다.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2030년에 전체 전력 중 36-3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며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과거 10년 대비 8배 이상 규모로 전력계통 정비를 가속화하고 2030년에는 홋가이도부터 해저직류송전망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저해하는 요인인 송전망에 대한 대대적인 확충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에 소요되는 자금을 대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이다. 해상풍력발전 도입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판 센트럴 방식'을 확립하여 해상풍력 보급 확대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보급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주민과 사업자 간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대한 사업 규율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제시되었다. 원자력 활용을 확대한다. 안전성 확보를 전제로 60년이 지난 원자로에 대해 추가적인 가동 연장을 추진할 예정이며 폐로하기로 결정한 원전도 차세대 혁신원자로로 새롭게 건설하는 사업 등도 계획되어 있다. 수소·암모니아 생산·공급망 구축, 잉여 LNG 확보, 배터리, 차세대 자동차, 차세대 항공기, 차세대 선박, 탈탄소 목적 디지털 투자, 주택·건축물 분야, 항만 등 인프라, 식료·농림수산업 등 분야에서 연구개발, 설비투자, 수요 창출 등 정책도 구체화하여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 녹색전환정책은 일본과 유사한 정책 목표와 사업 분야를 가지고 있어서 이 분야에서 한·일 협력은 양국에 매우 유익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을 국제사회에 약속하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수소사회 실현을 위한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구축, LNG의 안정적 확보 등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협력도 필요한 실정이다. 배터리나 차세대 자동차 등 신산업 분야에서 한·일 간 산업생태계 구축은 양국 기업 간 경쟁과 협력의 새로운 터전이 될 수 있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일 산업생태계 구축도 긴요한 과제다. 일본이 강점을 가지는 부품과 소재 분야를 한국이 강점을 가지는 대규모 제조 능력과 결합하고 새로운 산업 육성에 필요한 중요 광물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양국 협력을 통해 구축한다면 한·일 양국은 녹색전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적으로도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 간 녹색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한·일 협력을 지원하는 '한일녹색전환기금'을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창설하여 두 나라 기업 간 협력을 가속화하는 촉매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