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이·팔 전쟁 100일 …작동 않는 국제법 …짙어지는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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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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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국경 진입과 민간인 사살 테러로 촉발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수많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를 속출하면서 개전 100일로 치닫고 있다. 하마스의 테러행위에 대한 비난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도를 한참 넘은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이나 국가테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비무장 민간인들의 대량 학살에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을 제재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 오늘날 인류사회가 목도하는 무력감이고 비극의 핵심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유엔 단체들의 통계 보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2만2000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는 6만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민간인 희생자의 3분의 2 정도가 어린이와 여성들이라니 우리의 말문을 닫게 한다. 가자 북부의 완전한 폐허에 이어 중부 지역인 칸 유니스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면서 230만 가자 지구 주민의 80% 이상이 난민 신세로 전락하여 지극히 제한된 외부 세계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전기가 끊기고 물도 없이 추운 겨울을 나는 난민 캠프에 불어닥치는 위생과 팬데믹의 위협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절박한 호소도 들린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인도적 구호품은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통제되거나 차단되기 일쑤다.
 
이스라엘은 ‘굶주림을 전쟁무기’로 사용하는 최악의 비인도적 전술을 통해 가자 지구 주둔과 점령을 노골적으로 내비친다. 마지막 벼랑 끝인 이집트와의 라파 국경지대에서 생사투쟁을 하는 수십만 명의 가자 지구 시민들을 아프리카의 콩고나 이집트로 이주시키자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전시내각 장관들의 섬뜩한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은 이 전쟁을 계속 끌고 갈 심산으로 새해 들어 가자 침공작전을 3단계, 즉 ‘저강도 장기전’으로 전환하는 형국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도 앞으로 몇 주 내에 가자에서 전투 중인 수천 명 규모의 5개 여단 병력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민간인 학살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전략 수정을 강하게 요구해 왔던 미국과 국제사회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저강도 군사작전으로 가지 지구의 완전 통제나 점령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마스 완전 궤멸이라는 전략적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최근 네타야후 총리는 국내적으로 또 한 번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것은 집권 이후 최대의 민중시위를 촉발했던 사법권 통제 법안에 대해 이스라엘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위법 판정을 내리면서 네타냐후의 입지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 타파를 위해 네타냐후 정권은 다시 전쟁 드라이브 고삐를 죄면서 하마스의 본부가 있던 가자 북부를 완전 장악한 데 이어 중부 지역인 칸 유니스 지역에 대한 폭격과 점령을 이어가고 있다. 폐허 속에서 물과 전기 같은 기본적 삶의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에서 종전이 되더라도 살아갈 수 없는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사실상 내쫓고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전략적 변화는 이스라엘 스스로가 레바논이나 시리아와의 확전 카드를 사용하면서 전쟁 장기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의혹의 시나리오다. 가자 지구의 실질적 자치정부로 시민들이 선택한 하마스 정당의 존속과 국제적 위상이 입증된 현시점에서 조기 전쟁 종식은 하마스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 국내 여론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권의 종말을 의미하는 조기 종전이라는 악수를 네타냐후 총리가 선택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지난 2일 발생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대한 드론 공격이 대표적이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 정치국 2인자인 살레 알아루리의 암살이라는 성과를 올렸지만, 레바논 정부는 민간인 아파트를 향한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국제법 위반에 대응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곧 이어 3일에는 이란 혁명수비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암살 4주년을 맞아 열린 케르만주의 추모 행렬에 두 차례 폭탄테러가 발생해 10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이를 이스라엘의 테러로 규정한 이웃 국가들의 보복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자국 국경 내에서 벌어진 하마스 지도자 암살사건에 대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이란, 시리아, 러시아 등도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난하면서 잠잠하던 중동 확전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이 지금까지 취해왔던 묵시적 확전 방지 신사협약이 무너지면서 중동 전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은 이란이 주축이 되어 시리아 정권-레바논 헤즈볼라-팔레스타인 하마스-예멘 후티군 등이 연합전선을 형성하겠지만 국제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반(反)이스라엘적이라는 점도 그들에게 보복행동의 빌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점령 의도를 동지중해의 어마어마한 천연가스 자원 확보와 통제와 관련 짓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1998년 이후 가자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동지중해 연안에서 엄청난 매장량의 천연가스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미국의 에너지 기업 노블에너지(2020년 셰브런에 매각)가 발견한 타마르 가스전은 현재 이스라엘 전기 발전의 40%를 담당하고 있고 2010년 발견한 레비아탄 가스전에는 약 100년간 사용 가능한 양이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1998년 발견된 가자 지구 해안의 가자 마린 가스전이 핵심 쟁점이다. 결국 2023년 6월 이스라엘은 가자 마린 가스전 개발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가자 해안선을 이스라엘이 완전 통제하는 상황에서 하마스는 계속해서 “점령지에서의 자원 채굴은 국제법 위반이자 강탈 행위”라고 이스라엘을 규탄해 왔다. 이스라엘로서는 이런 엄청난 경제적 이권과 에너지 원천을 통제함으로써 하마스나 가자 정치세력들이 이를 활용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의 종전 압박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고통받아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 정부를 전쟁 범죄로 재소하면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략과 민간인 학살 쟁점은 이제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하게 되었다. 가자 지구뿐만 아니라 서안 지구에서도 350여 명의 민간인들이 이스라엘 군과 불법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사망했고, 10월 7일 하마스 전쟁 이후에만 5500명의 팔레스타인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이스라엘 교도소에 체포·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그중에는 355명의 아이들과 184명의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어 인류사회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국제사회의 점증하는 비판에 다급한 이스라엘 정부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 출신으로 트럼프 탄핵 사건을 변호하던 세계적인 법률가인 알란 데르쇼비치 교수를 긴급 선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번 전쟁을 가장 빨리 종식시킬 열쇠는 이스라엘 국내 여론의 향방이다. 이스라엘 내 최대 반전 시민단체인 ‘Peace Now’가 연일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대에 의한 잔혹행위와 민간인 학살을 실시간으로 고발하면서 즉각적인 종전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도를 넘은 민간인 학살과 국제법 위반에 대한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연일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계속되고 미국이나 유럽 내 유대인 공동체가 이스라엘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100일이 남긴 것은 국제사회의 질서나 국제법, 인류가 약속해 놓은 민간인 보호나 전쟁 규칙 같은 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구조에서 유엔의 위상이나 역할 강화가 어렵다면 이를 대신할 강력하고 실질적인 국제기구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이번 전쟁을 다루는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나 관점도 아직은 균형감각이나 객관적인 사실 보도 수준에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 대변인의 고도로 계산된 브리핑을 속보로 전달하면서 한국 언론들은 이스라엘 대변인 역할을 자초하는 경우도 종종 접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과도한 민간인 학살을 비난하면 곧바로 하마스라는 테러조직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총공세를 퍼붓는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전시내각은 하마스를 알 카에다나 IS 같은 테러조직으로 악마화하면서 이번 전쟁을 악마 집단들을 제거하고 인류사회를 지키기 위한 선이라는 끔찍한 선전전을 총동원한다. 스위스, 노르웨이 같은 유럽 국가는 물론 중국, 러시아와 중동의 많은 국가,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도 가자 지구 자치정부인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분류하거나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민간인과 삶의 기반을 겨냥한 무차별 폭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침략에 대해 국제사회의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하마스든 또 다른 분노 집단이든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도 결코 줄어들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숫자만 보더라고 지난 17년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숫자가 하마스에 의한 이스라엘 민간인 희생자의 20배를 넘는다. 왜 이스라엘 시민 한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데 팔레스타인 시민 몇백 명의 목숨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가.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기나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해법의 핵심이 될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경일에 줄줄이 참석하는 한국인 지식인들을 보면서 이날이 팔레스타인 국민들에게는 잊지 못할 대재앙인 알 나크바(대재앙의 날)라는 것도 동시에 기억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강한 나라라고 해도 이스라엘은 한 나라이고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공유하는 아랍-이슬람 국가는 57개국에 이르고, 우리의 실질적인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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