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규제와 더딘 규제 완화 속에 한국이 스타트업의 무덤이 돼 가고 있다. 가령 비대면 진료의 경우 코로나19로 한시 허용되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국내총생산(GDP) 상위 15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금지해 왔다.
비대면 진료뿐만이 아니다. 공유 숙박·승차 공유·원격 의료·드론·로보택시(무인 자율주행 택시)·핀테크(금융기술)·게임 등 여러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배출한 사업을 똑같이 한국에서 하려면 아예 기업 운영조차 어렵거나, 핵심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유니콘은 꿈에서나 보는 것이라는 풍토 안 돼”
한상우 위즈돔 대표는 지난 16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초원에는 얼룩말(스타트업)들만 넘쳐나고 유니콘은 꿈에서나 보는 것’이라는 풍토가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대표는 오는 27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4대 의장 취임을 앞두고 있다. 코스포는 2256개 스타트업과 혁신기업이 동참하는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다. 회원사 연매출 규모는 20조1497억원, 누적투자 규모는 30조5636억원, 회원사 고용 규모는 6만5886명에 달한다. 이 단체는 김봉진 전 우아한형제들 대표, 김슬아 컬리 대표·안성우 직방 대표·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박재욱 쏘카 대표 등 이름값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역대 의장을 지냈다.
코스포가 한 대표를 선택한 이유는 스타트업을 옥죄는 규제 대응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변호사 출신 창업가인 한 대표는 초중고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2009년 스마트앱을 이용한 버스 승차 공유 서비스회사 위즈돔을 설립, 고객들이 직접 모여 노선을 정하는 ‘e버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러나 버스업계 반발과 불법 시비에 휘말려 1년도 안 돼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한 대표는 수십년간 쌓인 기존 업계 헤게모니를 무너뜨리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e버스와 비슷한 유형의 사업 모델을 불법이 아니라는 2009년의 대법원 판례를 찾아내 정부를 상대로 문제 제기를 했으며, 결국 한 대표는 2011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위즈돔은 2013년 정부로부터 노선면허를 받은 모빌리티 1호 기업에 선정됐다.
“다시 스타트업하기 좋은 나라”
한 대표가 이끌어갈 올해 코스포 사업목표는 ‘본질에 집중, 스타트업·생태계 커뮤니티 선순환’이다. △코스포 커뮤니티·멤버십 활성화 △스타트업 정책 지원 강화 △글로벌 성장 기반 강화 등 3가지 축에서 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스타트업 창업가 커뮤니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정회원사를 기반으로 활동을 다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분과, 지역·산업협의회를 신설한다. 멤버십 혜택 강화, 생태계 파트너들과의 교류 확대, 국회·정부 정책협력 강화를 통한 규제개선 등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사업목표와 현실화 방안을 관통하는 핵심에 한 대표 캐치프레이즈인 ‘다시 스타트업하기 좋은 나라’가 있다.
한 대표는 “창업이 끊기는 건 출산이 끊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요즘 창업이 줄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며 “청년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서 ‘의대 안 가’, ‘나 몇살 전에 뭐 해볼 거야’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K팝, K푸드, K뷰티...다음은 K스타트업”
세계 최대의 IT·가전 전시회인 CES2024 혁신상 수상제품 중 65% 이상이 벤처·스타트업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국내 투자가 위축된 상황이지만, 국경 밖에서는 오히려 K스타트업에 대한 인정과 관심이 뜨겁다는 방증이다.
코스포는 글로벌 상황에 발맞춰 해외 분과 신설과 예산 투입을 결정했다. 국내 스타트업 글로벌 연착륙을 위한 동반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진출에 대한 욕구가 크다. 실제로 해외에 가서 해봤는데 초기 수치가 좋다 하는 곳들이 여럿 있다”고 전했다.
이어 “좋은 실크로드 닦아서 해외 진출 많이 하는 데에 코스포가 기여를 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며 “우리가 진짜 멋있게 해외에 진출할 타이밍이 온 것 같다”고도 했다.
한 대표는 “스타트업들이 사회혁신과 가치를 전하는 사회, 그것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이라며 “코스포가 스타트업 정신을 기반으로 멜팅폿(melting pot)으로서 역할을 하고 스타트업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연대하는 단체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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