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2일부터 15일까지 총 31개 상장사가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 가운데 오는 15일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주총 시즌이 시작된다. 국내 상장기업 2614개 중 2267개, 약 87%가 12월 결산 법인으로 3월에 주주총회가 몰려 있다.
올해도 여러 안건이 주주제안을 통해 상정됐다. 주주들의 주된 관심사는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 정책에 쏠려 있다. 2020년대 들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안건이 상장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한 번도 가결된 사례는 없었다.
지난해 한국ESG(환경·사회·지배구조)기준원(KCGS)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주주제안 건수는 2021년 168건에서 2022년 142건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195건으로 대폭 늘었다.
주주제안을 통해 상정된 배당은 2021년 1건이 가결됐지만 이는 이사회 안인 주당 250원과 주주제안 안인 주당 1000원 사이에서 500원으로 수정동의가 제출돼 가결된 사례라고 KCGS 측은 설명했다. 이를 제외하면 2022년과 2023년 가결된 배당 안건은 전무했다. 자사주 매입·소각도 통과된 사례가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총 의사 결정과 관련한 여러 구조적 결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사회의 독립적인 견제 능력 결여, 주주제안 누락에도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점이 소액주주 의견 반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서 동국대 교수는 "양립할 수 없는 복수의 주주제안이나 논리적으로 구분되는 내용의 단일 안건 상정에 대해서는 이사회가 이를 수정할 수 있다"며 "이사회가 그렇게 주주제안을 거부해도 현재로서는 제재 규정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상장기업의 주주환원정책을 앞세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올해 주총 시즌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연출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수 지분을 보유한 지배 일가가 보유 지분 이상으로 기업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발도상국형 결정권을 쥐고 있다"며 "그렇다 보니 행동주의펀드나, 소액주주연합, 개인 주주들의 주주제안 안건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결률 0%, 부결률 100%인 핵심 주주제안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지배소수주주가 과도하게 사유화하고 있는 기업을 주주 지분에 비례해 소유권이 돌아갈 수 있게 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근본적인 원리나 철학이 재정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빈 교수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나서서 각종 혜택을 통해 배당 확대를 유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결국 주주제안 무력화와 같은 일반 주주들의 사적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의결권이 소유권에 비례한다는 기초적인 자본주의시장 원리부터 다시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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