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행이 잇달아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태가 남긴 미국 경제의 상흔은 여전하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3월 SVB 파산으로 지역은행 곳곳에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하며 퍼스트리퍼블릭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이 무너졌다. 이들 3개 은행의 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25개 은행보다 컸다. 미국 정부 주도 아래에 이들 은행은 매각되며 붕괴 사태는 일단락됐다. SVB는 퍼스트시티즌은행에, 시그니처은행은 뉴욕커뮤니티뱅크(NYCB)에 흡수됐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이 인수했다.
그러나 SVB 사태가 미 경제 전반에 입힌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우선 ‘미국 스타트업의 돈줄’로 통했던 SVB의 파산으로 스타트업 업계는 유동성 부족에 신음해야 했다. 인공지능(AI) 혁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스타트업 업계는 2019년 이후 최악의 자금조달 수준을 기록했다. 스타트업 대부분은 과거 대출, 저축,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자금조달 등 대부분을 SVB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거래 은행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서 상업용 부동산과 관련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상업용 부동산,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사무실과 소매점 등에 대한 대출이 많은 은행을 확인했다”며 “이는 몇 년 더 연구해야 할 문제로, 은행이 파산할 수는 있으나 대형 은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로 막대한 손실액에 직면한 NYCB에서는 최근 한 달 새 보유 예금액의 7%에 달하는 58억 달러(8조원)가 빠져나갔다. 스티븐 므누신 전 재무장관이 이끄는 리버티 스트래티직 캐피털 등이 NYCB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하면서 시장은 한숨 돌렸지만, 우려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미국 투자 정보 사이트 인베스토피디아는 “고금리와 상업용 부동산 대출 노출은 여전히 많은 지역은행의 문제”라면서도 “일부 기관은 큰 위험에 직면해 있으나, 전문가 다수는 시스템적인 위기를 예상하진 않는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NYCB가 임대료 규제가 강한 뉴욕시의 다세대 주택 건물에 대한 노출이 커서 위기에 봉착한 점을 주목한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NYCB의 전체 대출 가운데 약 22%가 뉴욕시의 임대료 규제를 받은 다세대 주택에 몰려 있다. 임대료를 못 올리는 부동산들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NYCB가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들 전문가는 NYCB의 독특한 대출 포트폴리오로 인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
반면, 미국 투자은행 키프브뤼에트앤드우즈(KBW)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자산규모가 500억 달러 미만인 은행에 몰려 있는 점에 비춰, 지역은행의 고통은 계속될 것으로 봤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최근 비공개 회의에서 SVB 붕괴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면 다른 은행들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예금자들의 패닉에 따른 뱅크런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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