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는 '5월엔 팔고 떠나라(Sell in May and go away)'는 투자 격언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연중 5월부터 시장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는 만큼, 들고 있는 주식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고 장이 다시 좋아질 때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언제 돌아오라는 것인지도 알려 줍니다. 대략 6개월 뒤, 바로 10월 말 종교적 축하 행사에서 기원한 '핼러윈 데이'가 끝난 직후, 11월부터 증시가 좋아진다는 통념을 따르라는 것이죠.
핼러윈 데이가 끝난 뒤 반년간은 장이 좋고, 5월부터 반년간은 장이 나쁘다? 무슨 배경과 근거로 이런 얘기가 투자자를 위한 조언으로 통하게 됐을까요? 이번 공시학개론에서는 이 증시의 계절적 순환과 관련된 투자 격언의 의미와 배경을 소개하고 올해 국내 증시와 연관 지어 나오고 있는 전망을 살펴보겠습니다.
'5월엔 팔고 떠나라'가 투자 격언이 된 배경
캐나다 민간 금융투자 교육업체 기업금융연구소(CFI Education)에 따르면 이 격언은 영국 런던 금융권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 표현은 "5월에 팔고 떠났다가 세인트 레거의 날에 돌아오라"는 것인데, 여기서 '세인트 레거의 날(St. Leger's Day)'은 영국에서 유명한 '브리티시 트리플 크라운' 경마의 마지막 경기 구간인 '세인트 레거 스테이크'가 열리는 날이죠. 세인트 레거 스테이크는 1776년에 창설됐다고 합니다.CFI는 "원래 이 격언은 영국의 투자자, 귀족, 은행가들이 5월에 주식을 팔고 런던의 더위를 피해 여름(휴가)을 즐기다가 (매년 9월 중순께 열리는) 세인트 레거 스테이크가 끝난 가을에 주식 시장으로 복귀하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면서 "미국에서 일부 투자자들이 5월 미국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와 9월 노동절 사이에 투자를 자제하는 것으로 이와 비슷한 전략을 취한다"고 설명합니다.
왜 현대의 미국조차 연중 다른 날이 아니라 이 시기일까요? 미국 투자 정보 사이트 시킹알파에 따르면 여름철을 포함해 5월부터 10월까지 대략 반년간은 다른 기간에 비해 증시에서 지수가 하락하고 평균적으로 낮은 수익률을 나타냅니다. 1929년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서 일어난 '월스트리트 대폭락'과 1987년 발생한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은 모두 10월에 발생한 급격하고 심각한 주식 시장 폭락 사태였어요.
꼭 이런 대형 하락장이 아니더라도, 통계적으로 최근 30년 사이 주식시장에서 5~10월 사이의 수익률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의 수익률 대비 낮은 양상을 보여 줬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1990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증시 대표 주가지수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의 5~10월 수익률은 2% 수준이었는데, 이는 11월부터 4월까지 수익률 평균치인 약 7%에 비해 현저히 낮죠.
사회과학 분야 국제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사회과학연구네트워크(SSRN)'에 1998년 게재된 한 논문에 따르면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선진시장·신흥시장을 아우르는 경제권 37곳 중 36곳의 투자자들이 이 격언에 따라 5월에 주식을 팔고 10월까지 시장과 거리를 두는 양상이 나타났다고 해요. 학술지 '파이낸셜 애널리스트 저널'에 2013년 출판된 논문은 1998~2012년에도 이 전략이 채택됐다고 지적했고요.
11~4월 변동성 급증하는 '핼러윈 효과'
'5월엔 팔고 떠나라'는 격언과 맞물리는 개념으로 '핼러윈 지표(Halloween indicator)' 또는 '핼러윈 효과(Halloween Effect)'라고 불리는 것이 있어요. 이 효과를 의식한다면 10월 31일 핼러윈 데이 이후를 기점으로 11월부터 4월까지 주식을 사서 보유하고 있는 투자 전략이 수익을 내는 데 유리하다는 조언이 있습니다. 요컨대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쉬고, 겨울부터 봄까지 열심히 투자하라는 얘기죠.
미국의 덩컨 파이낸셜 그룹도 이 핼러윈 효과가 나타나는 겨울에서 초봄 사이 기간에 주식 투자 수익률이 좋았다는 통계를 제시합니다. 미국 주식투자자연감(Stock Trader’s Almanac)에 따르면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1950년 이후 11월부터 4월까지 평균 7.5% 올랐다고 해요. 같은 기간 5~10월 사이 평균 수익률은 0.3%에 불과했고요. 또 1950년 이후 11월부터 4월 사이에 손실을 낸 기간이 14%밖에 안 된다고 해요.
최근 1년 사이 국내 증시는 이 법칙을 따른 것처럼 보입니다. 2023년 5월 2일 코스피는 2524.39포인트였는데 10월 31일에는 연중 최저점인 2277.99포인트까지 폭락했죠. 이후 11월 1일 2301.56포인트에서 2024년 4월 2600~2700선을 오가고 있고요. 덩컨 파이낸셜 그룹은 통계적으로 11월부터 4월 사이 수익률이 좋은 이유를 그저 "움직이는 자금이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좋은 설명"이라고 봤어요.
미국에선 이때 핼러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새해맞이, 슈퍼볼, 밸런타인데이, 어머니의 날 등 여러 기념일과 행사 관련 소비가 일어나죠. 학부모는 자녀의 신학기 맞이가 포함돼 있고 일반 소비자 대상 블랙 프라이데이, 사이버 먼데이 세일도 진행됩니다. 대부분 주식 시장에 유입되는 미국 퇴직연금(401K)과 다른 직장인 은퇴자금 관련 고용주 부담금이 집행되고 연말 직원 성과금 지급과 세금 환급도 이뤄집니다.
하지만 항상 이 전략이 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최근 반례를 찾아보면 2017년 11월부터 2018년 4월 사이의 S&P 500 지수 수익률이 2.33%에 불과했던 일이 있어요. 2017년 5월부터 10월 사이의 수익률은 7.83%에 달했다고 하네요. 세계 경제와 마찬가지로 증시도 여러 국제적 사안과 연계돼 있고, 특정 기간 수익률을 예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2024년 5월은 어떨까?…"그 얘긴 무시하세요"
미국 투자 정보 사이트 더 모틀리 풀(The Motely Fool)은 월가 증권사 주식중개인 출신 필진이 쓴 2023년 5월 4일자 기사를 통해 "1979년, 1989년에 S&P 500은 여름 내내 급등했다가 10월에 폭락했고, 1983년 주식은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꽤 좋은 성과를 냈지만, 9월부터 저조해졌다"면서 "요점은 시장이 날짜에 기반한 평균을 무시하고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를 쉽게 내놓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모틀리 풀은 또 "50년 치 데이터의 평균에는 가끔 이상치(outlier)가 있으며 이는 정상치(norm)에서 잘 지워질 수 있다"고 했죠. 이어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할 수는 없으니, 여러분의 최선은 주식을 들고 장기 추세를 계속 주시하는 것"이라며 "올해 이맘때 즈음 주식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지 말고 그냥 여러분이 할 일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도 2021년 5월 보도를 통해 '5월에 팔라'는 오랜 증권가 격언을 투자자들이 이제 무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인용된 미국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전문가는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 5월의 세계 증시는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2021년 들어 수많은 미국 기업이 전망치를 한참 뛰어넘는 1분기 실적을 달성했고 7월에 발표될 2분기 실적은 더욱 뛰어날 것이라고 강조했죠.
한국 증시도 2021년 한 해만 놓고 보면 5월에 팔지 말아야 하는 시기였어요. 그해 연초 코스피 지수가 2944.45였는데 한여름인 7월 6일에 연중 최고점(3305.21)을 찍었거든요. 지수가 3200포인트 위에 머물렀던 대부분 기간이 2021년 6~8월에 집중됐습니다. 오히려 11월 30일에는 연중 최저점(2839.01)까지 떨어졌고요. 낡은 격언 때문에 5~10월을 피한 투자자가 있었다면 엄청난 손실을 봤을 거예요.
2024년 5월 증시에 최근 위축된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유가와 채권 수익률 급증 등이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요인에 약세장이 실현된 것만으로 '5월엔 팔고 떠나라'는 격언을 신봉해야 한다고 할 수 없지요. 그러기엔 예외가 너무 많습니다. 애초에 그 기원 자체가 250년 전쯤 귀족들끼리 피서 가려고 한 얘기에서 유래한 것만 염두에 둬도 이걸 '확신의 투자전략'으로 내걸긴 좀 민망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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