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성장세를 가늠하는 잣대로 통하는 구리 가격이 최근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인공지능(AI) 붐과 중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구릿값을 밀어올리고 있다고 닛케이아시아가 3일 보도했다.
지난달 20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선물(3개월물) 가격은 톤(t)당 1만1104.5달러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구리 가격은 t당 1만달러 안팎에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닥터코퍼’라 불리는 구리는 가격이 오르면 세계 경제가 확장 국면에 있다는 시그널로 읽을 수 있다. 중국 등 대규모 제조업 국가들의 공장이 활발하게 가동될 경우 구리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최근 구릿값 상승은 AI 붐에 따른 데이터센터 및 전기차 등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증가에 따른 영향이 크다. 전기차, 태양광 패널, 풍력터빈에는 구리가 많이 사용된다.
중국 정부가 지방정부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장려를 위해 최근 42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 부양책을 동원하는 등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구릿값 상승 요인 중 하나다. 중국은 세계 최대 구리 소비국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구릿값이 오른 데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러시아산 구리 취급을 금지하도록 규제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칠레 파나마의 코브레 파나마 구리 광산이 폐쇄되는 등 기존 구리 광산들이 문을 닫은 점도 구리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투기적 요인도 지적했다. 컨설팅 업체 우드 매켄지의 엘레니 조아니데스는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후퇴하며 주식 시장 전망이 어두워지자, 투기 세력이 원자재 시장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광산 기업 BHP가 영국 광산업체 앵글로 아메리칸에 인수 합병을 제안한 점도 구리 낙관론에 불을 지폈다. 앵글로 아메리칸은 세계 주요 구리 광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BHP는 인수 합병을 통해 이들 광산을 흡수하는 게 목표였다.
애널리스트들은 구릿값이 여름에 하락세를 나타낸 후 가을께 오름세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드 매켄지는 올해 구리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고, 호주 맥쿼리그룹은 7~9월 사이에 구릿값이 t당 평균 9800달러로 하락한 후 10~12월에 t당 평균 1만500달러로 오를 것으로 봤다. 골드만삭스는 구리 가격이 올해 말께 t당 1만20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도와 더불어 베트남,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포함함 신흥국이 녹색 기술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구리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맥쿼리는 인도의 구리 수요가 2030년까지 60% 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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