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19) 권력에 빌붙어 사는 무리들 - 추염부세(趨炎附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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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혁 에세이스트
입력 2024-07-0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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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혁 에세이스트
[유재혁 에세이스트]



정치권에 애완견 논쟁이 뜨겁다. 불을 당긴 건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대북불법송금 1심 판결에서 징역 9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자 이재명 대표가 언론을 검찰이 주는 걸 받아쓰는 '애완견'이라고 맹비난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얄미우리만치 냉철하게 계산된 발언을 하고 때로는 의도적인 동문서답도 서슴지 않는 이 대표답지 않은 직설적 감정 표출이다. 이화영의 변호사 말대로 '이화영이 유죄면 이재명도 유죄'라서일까? 판결을 내린 사법부엔 입도 뻥끗 못하고 검찰과 언론에 화풀이를 하는 게 영락없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사실 이 대표의 왜곡된 언론관이야 세간에 익히 알려져 있는 만큼 새삼스러울 건 없다. 관전포인트는 이 대표 결사 옹위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의 충성경쟁이다. 그 선봉에 선 노종면 의원의 발언을 들어보자. 노 의원은 "권력에 유리하게 프레임 만들어주는 언론을 학계에서도 애완견(lapdog)이라 부른다"며 당 대표를 지원사격했다. 그는 언론자유를 외치다가 해직된 YTN 기자 출신이다. 추미애 의원도 한 마디 거들었다. 추 의원은 "언론은 질문하고 추궁하고 대답이 없거나 틀리면 무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Dog(개)'은 예전부터 언론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했다. 입이 거칠기로 정평이 난 양문석 의원은 한술 더 떠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하시지, 왜 그렇게 격조 높게 애완견이라고 해서 비난을 받는지 모를 일"이라고 비아냥댔다.

충성경쟁의 화룡점정은 강민구 최고위원이 찍었다. 이 대표 면전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님이십니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70년 전통의 민주당이 졸지에 '이재명 신당'이 돼버렸다. 충성경쟁을 달리 표현하면 아부다. 자유당 때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하다가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모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정치사에서 아부의 전설로 남은 기념비적인 발언이다. 강 최고위원의 아버지 발언은 아마도 방귀 발언을 능가하는 아부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은 1964년생 동갑이다. 당 안팎의 논란이 커지자 강 최고위원은 “영남 남인의 예법”이라고 반박했지만 영남 유림들은 즉각 '아부의 극치'라고 꾸짖었다. 어설픈 반박으로 매만 더 번 셈이다.

이재명 대표를 예수와 개혁 군주 정조, 손흥민에 비유한 자들도 있는가 하면, 어느 전직 여성 앵커는 별명이 무려 '얼굴천재'인 인기 아이돌 차은우보다 이재명이 낫다고 억지를 부려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노골적인 아부 공세가 먹혔는지 민주당 텃밭에서 공천은 받았으나 막상 총선에서는 맨발로 뛴 국민의힘 후보에게 져 오매불망하던 금뱃지를 달지 못했으니 오호~ 통재라, 민심이 무서운 줄 어찌 그리 몰랐을까. 무소불위의 당권을 거머쥔 이재명 대표를 향한 낯뜨거운 충성경쟁, '명비어천가'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민주당이 방통위원장을 또 탄핵시키겠다고 한다. 방통위 업무를 마비시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현 MBC 체제를 지키는 게 목적이라는데, MBC에 대한 민주당의 사랑이 유별나다. 혹시 MBC는 민주당의 애완견인가? 특정인이나 정파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애완견인지, 당내 최고권력자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을 일삼는 측근들이 애완견인지는 현명한 유권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거라고 본다.

송나라 3대 황제 진종은 재위 25년 동안 선대 황제들이 축적해 놓은 국부를 탕진하고 빈껍데기로 만들었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는 법, 당시의 관직사회는 아첨꾼이 득세하는 풍조가 만연했고 그 정점에 재상 정위가 있었다. 진사에 급제하고 하급 관리로 있던 이수(李垂)는 능력이 출중했으나 올곧은 사람이라 그같은 풍조에 대한 반감이 컸다. 주변에서 정위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으나 그는 정위의 오만함과 공정하지 않은 일처리를 언급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 말을 전해듣고 발끈한 정위가 이수를 지방 관리로 좌천시켰다. 

4대 황제 인종이 즉위하자 정위는 실각하고 이수는 도성으로 복귀했다. 이수의 능력을 잘 아는 한 친구가 황제의 조서를 작성하는 관직인 지제고(知制誥)*에 그를 천거하고 싶어 신임 재상을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이에 이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만약 30년 전에 정위를 찾아갔다면 진작에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도 남았을 거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대신들이 일처리를 공정하게 하지 않으면 늘 대놓고 지적한다네. 그런 내가 어찌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빌붙어 자리를 얻는단 말인가?” 이수의 이 말이 오래지 않아 재상의 귀에 들어갔고, 이수는 또다시 지방의 한직으로 밀려났다. 

썩은 고기에 파리떼가 꼬이듯 권력자에게는 아첨하는 무리들이 들러붙는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입안의 혀처럼 구는 아부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손짓만 해도 아부꾼들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마치 주인을 향해 달려드는 애완견처럼. 이수는 비록 권세에 아부하기를 거부하여 두 번이나 지방으로 좌천되는 등 살아 생전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했지만 '추염부세(趨炎附勢)'라는 성어와 만고에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남겼다. 추염부세는 권세 있는 자에게 아부하고 빌붙어 입신출세를 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추염부열(趨炎附熱)'이라고도 한다. 

이수의 고사는 공직자의 자세, 더 나아가 지식인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뜬구름과 같은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언행이 역사에 어찌 기록될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인사들이 많으니 이는 용기일까, 만용일까? 아니면 무지의 소치일까? 지난달 퇴임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후배 정치인들에게 남긴 당부로 글을 맺는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이면 헌법기관답게 행동해야 한다. 정당의 공천을 받았어도 국회의원에게 표를 준 유권자 중 당원은 5%밖에 안 된다. 팬덤? 팬덤은 0.01% 정도다. 전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 지제고와 한림학사는 모두 황제의 조서를 기초(起草)하는 일을 했지만, 한림학사는 직급이 3품이고 지제고는 그보다 낮다. 또한 한림학사는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수시로 알현할 수 있는 일종의 최측근 수석비서관인데 비해 지제고는 황제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한림학사는 대개 재상의 유력 후보군이기도 했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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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이나 지금이나 . 인간세상이 그런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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